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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Jan 20. 2024

내 아이는 더 이상 공부시키지 말아주세요!?

청개구리 엄마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딸아이의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ㅇㅇ이는 수업 태도가 너무 좋고, 숙제도 늘 성실하게 해 오고 이해 속도도 빠르고요. 표정이나 반응도 좋아서 같이 수업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다만, 조금 더 노력하면 어휘도 더 완벽하게 외워올 수 있을 것 같고, 모의고사 대비로 시간 관리 연습을 조금만 더 한다면 효과가 바로 나올 것 같아서 제가 욕심이 나네요. 어휘 퀴즈 대비도 좀 더 철저히 하고, 별도로 문제집을 사서 풀어보고 스스로 체크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네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우리 ㅇㅇ이 잘 지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학원 선생님이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저,.. 선생님.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시간 괜찮으신가요?"


나는 양해를 구하고는 긴 입장문을 했다. 일종의 교육관이자 가치관이었다.  


오늘 전해두지 않으면 다음 상담 때 또다시 집에서도 관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될 것 같아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억지로 딸아이의 멱살을 잡고 책상 앞에 앉히고 싶지는 않다.

나는 엄마이자 보호자일 뿐, 매니저는 아니니까.



아이는 공부를 게을리하는 건 아니지만, 공부를 왜 치열하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필요할 것 같아서 제 발로 학원을 찾아갔지만 그 이상을 해내야 할 이유 또한 희미하다 한다. 장래희망이라 일컫는 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무기력하게 연체동물처럼 살거나(물론 침대와 한 몸이 되어 해가 중천에 오를 때까지 잠에 취해있는 날은 있지만), 삐딱한 시선으로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지는 않다.


흥이 오르는 날엔 신나게 피아노를 치고, 햇살 좋은 오후엔 정성껏 쿠키를 굽고, 밤을 새워 집요하게 그림을 그리며 열정을 불태우기도 하는 그런 아이다. 


다만, 그 뜨거움이 공부 쪽으로 향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직"이라는 사족을 붙이기는 조심스럽다. 그 말에 나도 모를 기대가 스며들까 봐 그렇다. 어쩌면 아이가 앞으로도 줄곧 공부에는 마음이 차가울 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사실,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억지로 불을 붙여 펄펄 끓여봤자 나나 아이나 속만 까맣게 타버릴 테니.


한 번도 아이에게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다그치거나 공부를 잘해야 인생이 편하다는 잔소리를 한 적도 없다. 멱살 잡고 매니징 한다 해도 스스로의 의지로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느슨해지는 순간 아이 역시 표류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아이 인생의 방향키를 내가 쥐고 잔말 말고 쫓아오라는 식의 교육은 원치 않는다. 교육은 부모의 책임임이 분명하지만 지금이 최선이라는 아이에게 잘해야 한다며 채근하는 것까지도 책임의 범주인지는 의문이 든다. 거듭된 우상향을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닐까.


내 아이가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단호히 등을 떠미는 부모들도 있겠지만, 내 눈에  아이의 등은 아직 작고 가련하기만 하다. 앞만 보고 달리라며 그 얄팍한 등을 밀어재낄 용기가 안 난다. 그저 따스히 안아주고 싶다.


더욱이 채근하지 않기로 한 건, 공부를 잘해야 인생이 잘 풀리는지, 과연 좋은 대학과 행복이 비례하는지 나조차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표가 없고, 경쟁도 싫은 아이에게 시간을 쪼개어 공부에 더욱 매진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확실한 행복도 보장하지 못하면서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빼앗을 권리가 내게 있는 것인지에도 의문이 든다.


난 청개구리 엄마인 걸까?


내 이야기를 들은 학원 선생님은 이렇게 상담을 마무리 지었다.


"아, 어머니 일단은 제 욕심도 내려놓고, 아이가 꾸준히 흥미 잃지 않고 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이끌어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해 본다.


맹렬히 노를 저어주지 않는 건 부모로서 자격 미달인 걸까? 먼 훗날 적극적으로 이끌지 않았던 시간을 후회하진 않을까? 아니, 이러다 내 아이가 실패하게 되면 어쩌지?


잠시 흔들렸지만 확실한 건 하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순간에도 내 아이는 삶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남들이 실패냐 성공이냐로 가름할 수 없는 본인만의 인생을 짊어지고 나아갈 뿐이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부득부득 "아니요"를 외치려는 걸 보니, 청개구리 엄마가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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