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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Jan 01. 2024

내 눈에 삶의 찌꺼기가 들어왔다

그럴 만도 하지

하얀 눈을 지르밟으며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정오쯤 된 시각. 연일 계속되는 한파에 대낮인데도 입김이 절로 나왔다. 겨울과 맞닿은 모든 곳이 차갑게 느껴졌다. 다만, 소복하게 쌓인 눈만큼은 반사되는 햇빛을 모두 끌어안은 듯 따사롭게  났다.


그 순간, 날파리 한 마리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이 추운 날에 벌레가 날아다니다니. 생명력이 강한 녀석이구나 했다. 이 시커먼 녀석은 하얗고 깨끗한 세상을 질투라도 하는 건가.


집으로 돌아와 점심 밥상을 차리는데, 새하얀 식탁 위에도 아까 보았던 시커먼 벌레 녀석이 날아다녔다.


이런, 날파리는 물컵 속에도 있었다. 다만 컵 속의 날파리는 점처럼 작았고, 식탁 위의 녀석은 딱 날파리 만했고, 눈 위의 그것은 선명하진 않지만 크기가 제법 되었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날파리는 곳곳에 날아들었다. 아, 어쩌면 이것은.



"비문증이 맞으시네요."


병원에 가기 전 증상을 검색해 보며 잠정적으로 비문증이라 결론을 내렸기 때문인지, 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력도 좋으시고 다행히 눈은 건강하세요. 일종의 찌꺼기가 유리체 안에서 부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생리적 비문증이라서 특별한 치료는 하지 않습니다. 아마 흰색 배경일 때 증상이 두드러지실 거예요. 적응하시면 괜찮아요. 다만 날파리가 여러 마리로 보이거나 시야 방해가 심해지면 꼭 다시 오세요."


의사 선생님은 상냥한 얼굴로 이렇게 굿 뉴스 하나와 배드 뉴스 하나를 건넸다. 다만 계속되는 나의 질문에도 눈은 매우 건강하다는 점을 몇 번 더 강조한 걸 보면 굿 쪽에 포커스가 맞춰진 듯했다.


그래, 다행이지. 다행이야. 내 마음의 주파수도 굿 쪽으로 맞춰보기로 했다.


사람이란 동물은 참으로 간사해서 멀쩡하고 이상이 없을 때는 감사란 것에 인색하다.


눈앞의 세상이 선명하게 오롯이 보일 땐,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은커녕 숨 쉬듯 너무나 당연해서 보고 있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그깟 찌꺼기 하나가 눈 속에 들어앉은 이후부터는 시야에 날파리가 없는 순간들이 귀하게 여겨진다.


밤보다는 낮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날파리가 사라지는 밤이 기다려진다. 해보다 달이 더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미니멀리즘 흉내내기에 바빠 새하얗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집착하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누리끼리하게 색이 바래거나 약간 흐트러진 공간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내가 찌꺼기를 달고 사는 것처럼 손길이 닿는 모든 곳에는 흔적처럼 찌꺼기가 생기기 마련이라는 너그러운 마음이려나.


어쩌면 그동안의 나는 티끌처럼 작은 것에 연연하며 더 큰 것을 보지 못하고, 찌꺼기인 줄도 모르고 사로잡힌 채 무언가를 놓치고 산 건 아닌지.


가까운 사물을 찡그리고 바라볼 때는 여지없이 날파리가 날아든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고 멍 때리듯 먼 곳을 응시하면 녀석은 사라진다. 신기할 따름이다. 삶의 찌꺼기만 보일 땐, 이렇게 멀리 내다보면 시야가 넓어질 수 있겠다는 철학적 사유도 곁들여본다. 거울 속의 나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날파리는 온데간데 없고 오롯이 나만 보인다. 나를 이렇게 또렷이 바라볼 때가 있었던가?


다만 책을 볼 때는 조금 불편하다. 옮겨가는 시선을 따라 점처럼 작은 녀석이 부단히도 움직인다. 확실히 거슬리지만 내 눈이 이렇게나 부지런히 일을 하고 살았구나 생각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40년 이상 썼으면 찌꺼기가 생길 만도 하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 온 내 눈을 아껴주고 싶은 마음에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에 잠겨본다.


덧) 2024년은 이렇게 된 눈 덕분에 더욱 느리고 느긋하게 살게 될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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