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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Dec 20. 2021

금사빠의 찬란한 덕질 연대기

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요

올봄부터 은밀하고 찬란하게 덕질을 진행 중인 형제가 있다. 농구스타 허웅과 허훈. 형제의 아버지를 향한 시선은 호와 불호로 갈리지만 나는 느그 아부지가 뭐하시노?와 관계없이 밝고 긍정적인 그들이 좋다. 건강미와 운동실력은 덤. 


농구 경기를 일일이 챙겨보지는 못해도 경기 일정은 대충 꿰고 있으며 하이라이트라도 챙겨서 플레이를 감상한다(특별히 소속 팀을 응원하는 것은 아니라서 감상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듯). 팀 순위, 개인 성적, 관련 기사 등도 수시로 검색하고 예능 짤이나 귀하디 귀한 어릴 적 영상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유니폼도 사거나 팬클럽에도 가입하는 등의 적극적인 애정은 아니다. 덕후로서 땡 탈락입니다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에 발을 들이는 순간 겉잡을 수없이 현망진창이 되어버리는 유형인지라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중이다.



몇 년 전 우연히 박효신이 출연한 뮤지컬을 보고 금세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그가 나를 팬으로 만드는 데는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1막이 끝날 무렵 원래부터 저렇게 매력 있는 가수였던 거냐며 갑자기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고 커튼콜 때 누구보다도 크게 환호성을 지르며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박수를 쳤다. 입 피리를 불 줄 몰라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날 이후 당장 팬카페에 가입하여, 그의 노래와 인생에 대해 벼락치기 공부를 시작했다. 안타까운 일들도 있었고 논쟁 거리가 될 사건들도 있었다지만, 내게는 넘사벽 보컬 실력과 부드러운 표정, 다정한 목소리밖에 안 보였다.


주야장천 그의 노래만 들었고, 존재조차 몰랐던 콘서트 실황 영상들을 무한 반복하다 보니 마치 그 공연들을 본 것처럼 기억 조작이 되었다. 어느 콘서트에서 무슨 옷을 입고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까지 완벽히 외웠다. 하도 보니 외워지더라.


인터넷상의 게시판이나 동호회에서 활동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나 팬을 일컫는 이른바 "뉴비"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 뮤지컬을 안 봤다면 평생 그렇게 완벽한 가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늙어갔을 거라 생각하니 늦게나마 입문한 것이 감사했다. 동시대를 살아온 나이대라는 것조차 무한 영광이었다.


이듬해 일명 피케팅 대혈전이라고 불리는 그의 콘서트 예매에 성공했고, 공연 한 달 전부터 뮤지컬 넘버가 아닌 그의 히트곡들을 예습했다. 진짜 팬이라면 버벅대지 않고 떼창에 동참해야 한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목청껏 함께 노래를 불렀던 콘서트 이후 드디어 초짜 팬 꼬리표를 떼냈다.


한동안은 콘서트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영상을 검색하면서 그날의 감동을 찾아간다.


그리고, 직장 생활에 대한 회의로 무기력에 빠졌을 때 내 손을 잡아준 건 그가 써 내려간 "야생화"의 노랫말이었고, 그가 부른 "숨"이었다.




그 이전에도 꽂히면 금세 사랑에 빠졌던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있었고, 여전히 애정 어린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있다.


중학생 때는 언니 따라갔던 농구장에서 연대 선수 이상민한테 반해버려 겨울 방학 때마다 농구장을 찾았다. 농구장이 만석일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벤치 뒷자리는 언제나 경쟁이 치열했다. 오빠들 얼굴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겠다는 일념으로 새벽부터 줄을 섰다. 농구 경기는 오후 2시나 3시인데 7시 반이면 잠실 학생체육관으로 갔다. 당시에는 인터넷 예매가 없었기에 일찍 일어나는 팬이 벤치 뒷자리를 점할 수 있었다. 현장 티켓팅이 시작되고 문이 열리면 소녀팬들은 우르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좀 더 재빠른 친구들이 자리를 맡았고 나도 꽤나 재빠른 편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우연히 본 음악중심(그때도 프로그램명이 이거였는지는 가물가물)에서 보이그룹에 완전 꽂혔더랬다. 예쁘장한 미소년들 사이에서 유난히 까무잡잡하고 카리스마 있는 멤버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은지원이었다. 이후 예능을 통해 보여준 모습들로 초딩이나 미친자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데뷔 당시 기획사에서 만든 그의  캐릭터는 과묵한 카리스마였고, 나에게 제대로 먹혔던 거다. 사인회 콘서트 그의 집 앞까지 그를 보러 서울 시내를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의  진짜 성격을 알고 난 후에도 그닥 실망하지는 않았다. 이래 봬도 사회적 물의나 도덕적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의리를 지키며 끝까지 응원하는 팬이라지.


그 이후에도 금세 빠져버려 팬이 된 사례는 수두룩하지만 남편한테 미안하니 더 이상은 밝히지 않아야지.



박효신 영상에 가슴이 설레고, 허형제 경기에 미소가 절로 날 때면 문득, 나 아직도 소녀처럼 철없이 살고 싶은 건가. 하는 민망함에 스스로 닭살이 돋곤 한다.


주름살이 늘어가는 얼굴로 멋진 남자들의 팬이기를 자처하며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는 것이 마냥 주책스럽고 이제 그만 멈춰야 하나 싶은 거다.


하지만 내가 이 나이에도 덕질을 멈추지 않고 응원하는 건 외모나 매력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이상의 에너지와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십춘기의 문턱에 설 무렵 직장에서도 표류 하던 나는 절망의 심연에서 박효신의 목소리로 위로를 얻고는 기어이 일어났다. 마음에 고요하지만 강한 물결을 일으켜주는 그의 노래가 한없이 소중하고 고마웠다. 


기운 없이 쳐져있을  때는 허형제의 밝은 에너지와 퍼포먼스가 활력을 깨운다. 경기를 즐기거나 클러치에서 포효하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짜릿함에 흠뻑 취한다. 전율은 때때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하나의 플레이를 위해 일 년을 아니 수년을 갈고닦아 온 노력을 알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최선을 다하는 젊은 그들을 응원한다.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건 나도 응원받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고, 비로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충만한 행동이 아닐까. 그들을 사랑함으로써 내가 더 행복해지고 나를 더 사랑하게 되는 마법이 이루어지는 것.


그들이 부디 오래도록 선한 영향력으로 승승장구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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