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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Jan 06. 2022

예체능 할머니가 되고 싶어

인생은 현재진행형

음악 미술 체육.


고등학교 때는 수능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등한시했던 분야들에 점점 애정이 생기는 나이가 되었다.


재미있는 건, 듣고 보며 관람하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해보는 것에 더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니 똑같은 빈도수를 가정할 때, 듣고 보고 관람만 하는 이 직접 하는 것보다 가격이 훨씬 비쌀 것 같기도 하다. 관객만 되는 건 하고 싶어도 못할 취미인가.


플루트


어릴 때 사촌 언니가 플루트 가방을 들고 음악학원에 가는 모습을  동경한 적이 있다. 당시 피아노조차 없었던 나는 그 집에 피아노를 치러 놀러 가곤 했는데 항상 플루트에 더 눈길이 갔다. 당시 플루트는 흔히 배울 수 있는 악기가 아니었기에 가난한 나에게 호기심과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20대 중반 무렵, 회사 동료 언니가 플루트를 들고 출근했다. 레슨을 다닌다며, 무려 400만 원짜리 악기라고 했다. 어깨에 악기 가방을 메고 퇴근하는 뒷모습의 우아함에 반해버렸는지, 플루트 소녀가 되고 싶었던 동경이 되살아나 백화점 문화센터 플루트 강좌를 덜컥 신청했다. 예술의 전당 앞 악기상에 플루트를 사러 갔을 때의 설렘은 여전히 생생하다.


결혼을 한 후 장롱 속 어딘가에 처박아 두었다가 딸에게 레슨을 권했고 아이는 지금도 꾸준히 취미로 삼고 있다. 아이의 연주를 들을 때면 사촌 언니 집에서 피아노를 치다 말고 플루트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어린 날의 내가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하고 싶어졌다.


발레


사무직 10년 차가 지나면서 직업병이 왔다. 장시간 집중하면 목이 뻣뻣하고 허리도 찌릿찌릿 쑤시고 몸 여기저기가 삐걱댔다. 자세교정 라인교정 재활운동 이런 키워드를 검색하다 발레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가만 발레가 운동이었나?


막상 해보니 발레는 운동이었다. 코어 힘을 위해 근력 운동을 토하도록 하고 팔다리를 길게 쓰는 훈련을 반복했다. 근력 이후 남은 시간에는 발레 동작을 배운다. 내 몸뚱이로도 예쁜 척을 할 수 있다니 경이로웠다. 이직과 코로나로 중단했지만 여전히 발레라는 말만 들어도 설렌다.


그림


그림은 여전히 낯선 영역이다. 소질도 없거니와 학교 정규 수업을 제외하면 제대로 배운 기억도 없다. 안 해보니 더 못하고, 못하니까 안 하는 분야였다.


못 한다고 해서 세상 사는 데 불편함도 없다. 아! 아니다,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자꾸 그림을 그려달라 하면 난감했다. 네모난 자동차와 동그라미 여러 개를 이어 붙인 듯한 꽃만 주야장천 그려줬다. 딸아이가 6살쯤 되자 내 그림이랑 수준이 비슷해졌다. 그 이후에는 그려달라는 말을 안 했다. 편해졌다.


그런데, 좀 더 시간이 흐르자 예쁜 디자인, 아름다운 색의 조화에 눈을 떼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예쁜 디자인과 색감을 뽑아내는 사람들이 신기했고 부러웠다. 출근 코디를 할 때마다 컬러의 조화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썼고,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어느 날, 아이가 그리다 만 피포 페인팅에 시선이 머물렀다. 드문드문 색이 비어있는 공간을 색칠하기 시작했고. 완성한 날에는 탄성을 질렀다. 나의 첫 작품이 되었다.




30년 후의 나는 플루트를 연주하고, 발레를 계속하며, 그림을 배워나가는 할머니였으면 좋겠다.


고상한 삶을 꿈꾸는 거냐고 묻는다면, 현재를 사는 할머니가 되고 싶을 뿐이라고 답하련다.


주변 어른들을 보면서 나는 좀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곤 한다. 경제적으로 이룬 부를 자랑하거나, 과거의 영광을 으스대거나, 자식이 잘 나가면 입이 근질대고 손주들이 다른 집 아이들보다 똑똑하다고 자부하고 싶어 하는 어른들이 많은 것 같아서다.


그들의 현재는 물질이나 과거에 이룬 것들, 혹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현재에 머무는 느낌이 든다.


나이가 들며 관심사가 그렇게 옮겨가는 것이니 그들의 삶은 존중한다.


다만 부를 하루 만에 잃거나 중독처럼 부만 쫓게 될 때, 더 이상 아무도 옛 영광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거나 옛이야기가 고갈되어갈 때, 그렇게 믿었던 자식이 속을 썩이거나 자식의 성공에 집착하게 될 때, 내 손주가 그리 똑똑하지 않다는 걸 알았거나 뒤처지지 않도록 간섭하게 될 때. 


그러나 기껏 손에 쥔 이것들을 놓기 싫어 발버둥 칠 수밖에 없을 때.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나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던 것들이 내 곁을 떠나갈 때.


나는 계속 존재하는데 현재의 삶에 내가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허공 속 비눗방울 같은 삶의 허무함이 성큼 다가올 것 같다. 불쑥 들이닥친 무기력에 고개를 숙인 , 습관처럼 늙으면 죽어야지 라는 말을 되네이고 싶진 않다.

  

젊었을 때 배웠던 것, 좋아했던 것을 꾸준히 곁에 둔다면 노년에도 나의 현재가 존재하지 않을까? 숨쉬고 있는 순간을 담아내는 예체능, 그리고 글쓰기를 놓지 않으려는 이유다.


허공 속 비눗방울같은 삶이 아닌, 비눗방울을 불며 살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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