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억의저편 Dec 21. 2023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사랑은 모든걸 극복한다.

 작가 정지아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당연히 나의 무지함을 탓하기도 했고, 오랫동안 책을 가까이하지 않음 이였으나, 왜 대한민국 문단에 이렇게 작은 울림으로 밖에 알려지지 않았을까?

몇 권의 소설이 책 초반에 소개되고 다음에 이어지는

여러 수상들에 깜짝 놀랐다.


김유정 문학상, 이효석 문학상, 한무숙 문학상,

올해의 소설상, 노근리 평화문학상 이다.


그런데 왜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노벨문학상을 아직 수상하지 못해서였나?

노벨문학상 정도 아니면 대한민국에서 여류작가는 세상에 이름을 날릴순 없나보다... 생각 아닌 생각을 하면서,

그 답을 그의 책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알게되었다.


 정지아 작가에 나의 평가는 이렇다. 21세기 박경리 선생의 부활로 보였다. 박경리 선생의 영혼이 정지아

작가로 이여져 말할 수 없는 공감대의 소설을 써대는 것처럼 보였다.

박경리 선생도 정지아 작가도 공통적으로 지리산 자락을 일대로 펼쳐지는 인생파노라마를 소설로 역어 냈다. 지리산 작가들로. '지리산 문학상'이 곧 생길듯 하다.


 박경리 선생은 하동에서, 정지아 작가는 구례에서, 조선말 동학에서 근대사 일제, 6.25전쟁 직후까지 지리산에서 죽어간 혼령들의 한恨이 '토지'로 '아버지의 해방일지 '로 살아서 원없이 그들의 역사를 그들의 한(恨)을 토해 내는 것이 아닌지 생각을 해 보았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의 소설에는 여러 사회주의가 있는 듯 하다. 주인공인 아버지의 사회주의, 어머니의 사회주의 그리고 그의 딸의 사회주의, 나아가 소설의 프리즘을 통해 본 나같은 독자가 느끼는 사회주의다.


 민중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그녀의 아버지의 사회주 에는  인민이 항상 따라 다녔고, 인민이 곧 그의 사회주의에 있어 정점 이였던 것으로, 그 인민은 딸의 세계관에 빈대를 옮기는것과 같은  배고픔과 가난의 맹아로써 굽어진 사회주의로의 해석을 채워갔다.


 아버지의 사회주의는, 아버지에게 1948년 초, 5.10단선반대 운동으로 인간으로써는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고문의 절정을 하사했고, 그의 집안에는  여순사건을 기점으로 빨갱이 집안 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 주었으니, 그의 집안 출세에 있어 장애물같은 거대한 바위돌 하나를 던져준 사상 쯤 이다.   


  아버지 형제분들의 미움까지 동력으로 삼는 그의 사회주의는,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 그에겐 어머니요 그의 딸에게 있어 할머니인데, 그 할머니의 손주사랑, 자식사랑 앞에서는 그 거침없던 사회주의  의 기세가 한풀 꺽여버린다.

사회주의는 어미.할미의 사랑을 도저히 당해 낼 순 없는 가 보다.


  책의 초반부를 관통할때 나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인민을 최고로 여기며 파죽지세로 달리는 열차처럼 보였으나 사랑없는 텅 빈 장소요, 형제간의 분열, 부녀간의 틈과 거리를 야기하는 해체주의적 사회주의로 형성해 갔다.


  그러나 책의 초반부를 넘어설 무렵 해체의 총아였던 사회주의는 사상전의 대립축에 불과했고, 역사 흐름의 한 점일 뿐 인간 본성의 사랑앞에 아무것도 아니 였음 을 아버지의 친구 박선생의 가족사를 보면 여실히 이해

다는 것 이다.


  박선생의 형과, 누이는 빨지산으로, 박선생은 그들을 소탕하는 학도병 출신 으로 지리산을 그 가족인 형제, 누이의무덤  으로 만든 장본인이 그이다.


 그의 총구앞에서 그의 가족사가 지워져 버렸다. 그래서 그는 지리산 자락을 떠나지 못하고 술은 눈물이 되어 떨어진다던 그의 고백에 난 사랑의 무한한 본성을 알아챘다.


 이것이 인간 본성이고 인간의 원형이다.

사랑은 사상을 극복 할 수 있으나, 사상은 사랑을 넘어 설 수 없다는 것도! 우리 삶의 세포에 또렷이 각인 된 것이라 보여지는 지점이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사상의 가치가 만고의 진리인 인간애愛 앞에선 눈녹듯 사라져 버린다.


"그날, 군인들은 아홉살 작은아버지의 등에 총을 겨눈채 마을로 내려갔다"


이 행간에 담겨있는 또 다른 사상, 그러나 인간애愛없기로는 마찬가지인 사상.


"군인들은 물러가기 전 집집마다 불을 놓았다.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의 한옥이든 상놈의 초가집이든 불은 훨훨 잘도 붙어 순식간에  반내골은 검붉은 화염에 휩사였다".


이 글에서 보여주는 모습 속 사상은 무엇인가?

인간애를 소멸한 사상이 생기를 얻어 인간사에 진입할 때 인간은 연대애와 관계애를 상실해 버리고 존재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폭주열차로 변한다.


 이것이 근본(사랑)없는 사상인 것이다. 이 사상 앞에

수많은 인간의 존엄과 생명이 무가치하게 버려졌고 죽어갔고 사라져 갔다. 허나 그것을 인간 원형의사랑과 인간애로 극복하고 회복할 수 있음을 작가 정지아는

소설을 통해 말 하고 싶었던게 아니였을까?

 

"어이, 황사장. 나가 분이 나겄능가, 안 나겄능가. 자네도 쪼까 생각을 해보소. 나는 베트공들허고 싸우다가 다리 벵신이 됐는디, 나헌티는 땡전 한푼 안 줌시로 저런 뽈갱이

멩 끊어졌다고 군수에 국회의원에, 화환이 시방 말이 되능가? 쩌놈이 독립군이여, 애국자여? 반역자여, 반역자!


주인공의 장례식에 나타난 또다른 사상의 인물. 그가 상주인 주인공의 딸 앞에서 이렇게 퍼부은 이유는 곧 짐작이 갔다.

자신의 다리 한쪽을 앗아간 올곧은 또다른 사상인 애국적 신념은 항상 빨갱이를 저주하는 욕지거리를 먹고자라는데 그 빨갱이가 죽어버렸으니, 자신의 한쪽 다리를 취한 올곧은 사상은 자신처럼 절름발이 신세가 되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래서 분통이나고 길을 잃어버린 심정 이였을까? 그러나 결국은 그도 사상전의 이데올로기적 화염의 땔감에 불과했음을, 빨갱이의 장례식에서 깨닫고 모든것을

내려놓고 한 인간으로 되돌아 간다.


  나에게 사회주의는 그리고 자본주의는 서로의 대립물이며 역사를 횡단하는 우리 인간생의 시대의 조각일뿐, 연대의식 앞에 개인의 존재를 담아내지 못하는 절름발이 사상이며, 새 시대를 담지 못하는 작은 그릇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를 자본주의를 지워야 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극복 해야 하는 인간역사의 언덕이자 새로운 시대로 가는 디딤돌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시대는 우리 다음 세대들 이  어떻게 기록 하는가에 달린  것이 다.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는 유물론적 사상을 무장하고, 자신의 아내에게도 철저한 유물론적 자기검열을  요구하며 자본주의를 관통해간다. 아니러니다. 어쩌면 삶이 아니러니 일수도 있겠다.


 두 사상(자본.사회)이 서로 충돌하며, 충돌하는 두 사상은 다시 인간 본연의 사랑(인간애)과 융합 되는 과정을 거듭하며 무엇을 창조할지, 무엇으로 변형될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이나, 인간 본연의 사랑의 연대가 삶과 죽음의 중심이요! 모든것을 극복하고 모든것을 창조해가는 핵심이요! 원형이라는 것을! 작가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말하고 있는게 아닐까?


  더 탐독하면,

"결과적으로 옳았든 틀렸든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이 말에서 아버지는 그림자처럼 평생을 따라다니던 그의 유물론적 사상인 사회주의로부터,(아니 그가 끝까지 고수해 왔던)

그의 죽음을 통해 마침내 탈피한다.탈피라기 보다는 해방이다. 해방 이라기 보다는 완결이다. 그의 철옹성의 사상은 그에게 삶의 애환이였다. 지리산에서 죽은 동료에  대한 애환이였다. 사회주의를 함께 꿈꿨던   지리산의 동료의 시체에, 죽음에 그가 끝까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 정신을 견지한것은 동료의 죽음이, 투쟁이 헛되지 않았음을, 먼저 떠난 동료의 죽음에 대한 기치를 세우는 일 이였다.


 그  스스로가 자신의 치매를 인지한 순간, 그는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었다. 더 이상 사회주의사상이 그의 정신에 한 뼘의 공간도 담을 수 없음을 인지 한 순간 이였으리라.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주인공 딸은 이렇게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조문객의 아버지에 대한 경험과 추억을 들으며 아버지를 다시금 탐구해가며 마음 한 구석에 새로운 아버지의 생을 기록해 간다.


힘겨웠던 그의 삶은, 그가 인민이라 여기며 헌신했던 이들에게 눈물의 기억으로 남게 되리라. 얕은 미소로 피어나리라. 그를 한 평생 째려 보기만했던 딸이 올곧은  이해로 다시 그를 해석 하리라.


그렇다면,

사회주의, 자본주의, 사상, 종교, 유물론, 신념 등등...이것들은 다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하면, 태곳적부터 존재했던 사랑의 쟁반위에 담긴 다양한 삶의 양념 뿐으로 쓰고, 달고, 시고, 짜고, 맵고 등등의 삶의 다양성을 말하는 시대의 스펙트럼일 것 이다.


  그 시대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빛추고,  무엇을 침전할지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생들의 몫이고, 그것의 냉엄하고 아주

객관적이고 명확한 평가는 그의 자녀들의 몫인 것이다. 그러니 살아가는 것이다. 힘껏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답이다!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먼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


이 말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내는 것이다. 인심잃지 않고...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하며..


 소설속 아버지의 딸이 한 낮 가루가 된 그의 아버지를 여기저기 뿌리며 나중에야 알게 된 듯. 나도 나중에야 깨닭게 된 것은 우리의 대립은 사상이 아니라, 주의(predominant)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삶과의 대립이라는 것을.나 자신과의 대립이라는 것을.


"우리가 싸워야 할 곳은 산이 이니라고. 사람 들이 불빛 아래 옹기종기 모여 밥 먹고 공부하고 사랑하고 싸우기도 하는 저

세상이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