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분열과 대립의 역사
표지 사진: 현재 서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분쟁 지도 / 출처: 김지원, '이란 vs 파키스탄… 우크라·가자 이어 남아시아 ‘3개의 전쟁’ 우려', <조선일보>, 2024-01-19
1,400년이 넘게 이어져온 순니와 쉬아의 갈등이 현대에 이르러 격화된 결정적인 계기는 1979년 이란에서 벌어진 ‘종교 혁명’이었다. 팔레비 국왕(Moḥammad Rezā Shāh Pahlavī, 1919~1980)의 독재와 폭정 그리고 지나친 세속주의에 항거해 봉기한 이란 민중은 아야톨라(Ayatollah: 쉬아파의 大성직자) 호메니(Ruhollah Musavi Khomeini, 1902~1989)를 지도자로 삼아 혁명을 일으켜 왕정을 폐지하고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했다.
호메니는 이란의 권력을 장악한 후 이슬람 전체의 지도자를 자처하면서 ‘종교 혁명’을 이슬람 세계 전역으로 확대하려고 했다. 대부분 왕정체제였던 순니파 국가들의 지배층은 '쉬아파 신정체제(神政體制) 공화국'을 추구하는 이란의 종교 혁명이 확산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각국의 순니파 일반 민중들 역시 이란의 신정체제가 보여준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와 공포 정치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이란을 향한 공격의 선봉에 선 순니파 국가는 사담 후세인 일인 독재체제의 이라크였다. 이라크는 사실 샤트 알 아랍 수로(Shatt al-Arab waterway)의 지배권과 이란의 유전 탈취가 목적이었으나, 순니파를 대표해 쉬아파 이란 혁명정권을 타도하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이란-이라크 전쟁(Iran–Iraq War, 1980~1988)을 일으켰다. 양측이 공히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도 전쟁은 결국 무승부로 끝났으나 이 전쟁을 계기로 순니와 쉬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이후 순니파 국가에서는 노골적인 쉬아파 탄압이 벌어졌고(이라크에서 가장 극심했다. 사담 후세인은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쉬아파를 정권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보고 집단 폭사(爆死), 생매장 등의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해 대량학살하고 폭압했다.), 순니파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 왕가는 은밀히 순니파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조직 알 카에다(al-Qaeda)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Taliban)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이란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순니파 국가들에게 반격을 가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나 예멘의 후티 반군을 지원해 순니파를 공격하고 내전 중인 시리아에 이란 혁명 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를 배치해 쉬아파 집권세력(아사드(Bashar al-Assad, 1965~현재) 정권: 아버지(하페즈 알 아사드(Ḥāfiẓ al-Asad, 1930~2000)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아 53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는 극악무도한 독재 정권)을 비호하고, 이스라엘을 견제하고 있다.
각각 순니와 쉬아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갈등은 1987년 메카 성지순례(하즈, Hajj)를 둘러싸고 폭발했다. 그해 메카에서는 순니파 무슬림들의 모욕과 폭력(순니파 무슬림들은 메카 성지순례에 참가한 쉬아파 이란인들에게 돌을 던지고 욕설을 퍼부으며 공격했다.)에 저항한 이란인 순례자들의 시위를 사우디 공안당국이 강경진압하면서 이란인 275명을 포함해 400여 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란은 이에 항의해 1988년과 1989년 성지순례를 중단한 바 있다.
2016년 1월 3일, 사우디아라비아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지지한 저명한 시아파 성직자 님르 바크르 알 님르(Nimr Baqir al-Nimr, 1959~2016) 등 47명을 테러 혐의로 처형하자 이에 격분한 이란 시위대가 자국 주재 사우디 대사관 건물을 방화ㆍ공격하면서 양국은 외교관계 단절과 함께 모든 교역도 중단했다. 이란과 사우디의 외교 관계는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23년이 돼서야 중국의 중재로 겨우 회복될 수 있었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이란은 오래전부터 공공연히 핵무기 개발을 추진해 왔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이란 공화국의 헌법에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것이 자국의 신성한 의무라고 명문화되어 있다.)과 서방을 겨냥한 것이지만 암묵적으로는 순니 아랍국들을 위협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에 맞서 아랍 에미리트 연합(UAE: United Arab Emirates)과 사우디 왕국은 최근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아랍 산유국이 원자력 발전을 도입한다는 것은 일종의 난센스다. 경제적인 측면에선 석유와 천연가스를 이용한 화력 발전이 훨씬 유리하고, 환경을 고려한 대체 에너지 개발이라는 측면에서는 원자력보다는 태양광 발전(서아시아 지역은 태양광 발전에 최적화된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런데 왜 이 두 나라는 원자력 발전을 추진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사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들은 두 부류 중 하나에 속한다.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이거나 아니면 앞으로 핵무기를 보유할 의사가 있는 나라, 이 둘 중 하나이다.
최근 환경 문제가 불거지면서 원자력 발전이 탄소 배출이 없는 청정에너지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는데, 원자력 발전은 결코 청정에너지가 아니며(원자력 발전의 부산물(副産物)인 핵폐기물의 방사능 반감기는 무려 평균 500년이나 된다. 이런 극도의 유독성(有毒性) 발전 방식을 단지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다고 해서 청정에너지라 부르는 것은 불합리 중에 불합리한 발상이다.), 따라서 원자력 발전은 결코 미래의 대체에너지원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은 국방상의 필요 때문에 원자력 발전을 포기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가 그렇다.(북한이 무너져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 해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라는 강대한 적성국들에 둘러싸인 최악의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나라다.)
대한민국은 1972년 최초로 원자력 발전(고리 원전 1호기)을 시작했는데, 국민들에겐 제1차 석유 파동(Oil Shock)을 극복하기 위한 대체에너지 개발 차원에서 원자력 발전을 선택했노라 선전하고 있지만 이것은 명백한 오류다. 제1차 석유 파동은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故박정희 대통령이 원자력 발전을 선택한 것은 1969년에 발표된 미국의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과 이에 따른 1972년 미 육군 7사단의 한국 철수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서거할 때까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었다.
UAE와 사우디 왕국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운영도 같은 맥락이라고 봐야 한다. 양국은 공히 이란의 핵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핵무기 보유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 또한 순니와 쉬아의 대립과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2023년 10월 7일에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2023 Israel–Hamas war)의 배후에 이란이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 때부터 미국은 서아시아 평화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순니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서로 상대방을 교차 승인하는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 조인을 추진해 왔다. 최근 사우디에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al Saud, 1985~현재) 왕세자가 최고 권력자로 올라서면서 ‘아브라함 협정’은 급물살을 탈 뻔했다. 순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수교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UAE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이스라엘과 수교한다면 여타 순니 아랍국들도 줄지어 아브라함 협정을 조인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사우디 비전 2030(Saudi Vision 2030)’과 ‘네옴 시티 프로젝트(NEOM City project)’를 통해 국가 개조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빈 살만 왕세자는 이 원대한 구상을 성공시키기 위해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이 절실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여기는 이란이 이 꼴을 두고 볼 리 만무했다. 이란은 비록 순니파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과 극한 대립을 벌이고 있는 하마스(Hamas)를 지원해 서아시아 평화 정착을 위한 각국의 시도에 재를 뿌려 버렸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탓에 서아시아는 평화는커녕 전쟁의 도가니에 빠져 들었다. 전쟁의 두 당사자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가자지구(Gaza Strip)는 말할 것도 없고, 헤즈볼라의 도발 때문에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접경지대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이뿐 아니라 이란의 사주를 받은 예멘의 후티 반군이 아덴 만을 지나가는 상선들을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해 공격하면서 서아시아의 전세는 확장 일로에 있다.
최근 2024년 1월 4일에 이란 남동부 도시 케르만(Kerman)에서 벌어진 가셈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1957~2020) 사령관의 추모식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탄 테러(이란은 이 사건을 이스라엘의 모사드(Mossad: 이스라엘의 첩보기관)가 저지른 것이라 주장했으나, 결국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K(Islamic State Khorasan Group)의 소행으로 밝혀졌다.)의 책임 공방을 두고 이란과 파키스탄이 서로 상대방을 미사일과 전투기를 동원해 공격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전선이 점차 서아시아를 넘어 남아시아까지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 또한 순니와 쉬아의 갈등과 대립의 일환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1,400년에 걸친 순니와 쉬아의 갈등과 대립은 과거의 역사로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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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색으로 표시된 책은 추천도서입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완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