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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Jan 31. 2024

순니 Vs. 쉬아 03

이슬람 분열과 대립의 역사

표지 사진: 전 세계 순니파와 쉬아파의 세력 분포도(연두색이 순니파, 진한 녹색이 쉬아파) / 출처: 나무위키, <시아파>





제 3 장  현대 순니파와 쉬아파의 세력 분포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680년에 벌어진 카르발라 전투 이후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이슬람 세계의 패권을 차지한 왕조가 대부분 순니파였기 때문에 현재도 전 세계 무슬림의 약 85%가 순니파이고 쉬아파는 15%에 불과하다. 


하지만 순니 주도의 이슬람 세계에서도 쉬아파는 명맥을 잃지 않고 부와이 왕조(Buyid dynasty, 932~1055)나 파티마 왕조(Fatimid dynasty, 909~1171) 그리고 훗날 이란의 사파비 왕조(Safavid dynasty, 1501~1736)와 팔레비 왕조(Pahlavi dynasty, 1925~1979)에까지 이어지며 세력을 유지해 갔다.

     

오늘날 서아시아에서 순니와 쉬아의 세력권이 갈린 계기가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 맞서기 위해 아랍인들의 반란을 부추겼다. 이에 화답해 반란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후세인-맥마흔 서한(Hussein-McMahon Correspondence: 영국의 이집트 주재 고등 판무관 헨리 맥마흔(Sir Vincent Arthur Henry McMahon, 1862~ 1949)이 아랍의 정치 지도자 후세인 빈 알리에게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5년 1월부터 1916년 3월까지 10차례에 걸쳐서 전달한 전시외교정책에 관련한 서한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아랍이 영국 편에 서서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주면 전후 서아시아 지역에 독립된 아랍 국가를 수립해 주겠다는 영국의 약속이 담겨있다.)의 주인공 샤리프(Sharif) 후세인(Hussein bin Ali al-Hashimi, 1854~1931)이다. 무함마드의 가문인 하심가의 후손으로 메카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샤리프 후세인은 영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아랍의 여러 족장들을 규합해 독립을 위해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다. 


이때 노쇠한 후세인을 대신해 전투를 이끈 그의 아들들과 함께 아랍 반란군을 지휘한 인물이 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로 널리 알려진 영국 장교 T. E.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 1888~1935)다. 


Col. T. E. lawrence in 1918 / 출처: Wikipedia, <T. E. Lawrence>


로렌스와 아랍 반란군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오스만 튀르크 제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으나, 제국주의 확장에 야욕을 품고 있던 영국은 프랑스와 밀약(사이크스-피코 협정: Sykes–Picot Agreement, 이 협정은 1916년 5월 16일에 최종적으로 조인되었다.)을 맺고 서아시아를 분할ㆍ점령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은 반란에 앞장선 아랍 족장들을 상대로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나선다. 사이크스-피고 협정에 따라 프랑스의 몫으로 돌아간 터키 남동부, 이라크 북부, 시리아, 레바논 지역을 제외한 서아시아 지역 대부분이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했으나, 영국은 형식적으로나마 땅을 분할해 국명을 정하고 對터키 반란 전쟁에서 공을 세운 아랍 족장들을 각국의 왕으로 책봉했다. 


이때 아랍의 반란을 주도한 메카의 수호자, 샤리프 후세인의 아들들(1921년 첫째 알리는 부친의 뒤를 이어 헤자즈의 왕이 됐고, 둘째 압둘라는 요르단의 초대 국왕이, 그리고 셋째 파이살(전쟁 기간 중 아랍 반란군의 실질적인 수장으로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영국 장교 T. E. 로렌스를 아랍 반란군의 지휘자로 발탁한 이도 바로 파이살이었다.)은 이라크의 초대 국왕으로 각각 즉위하였다.)과 수하의 족장들이 모두 순니파였기 때문에 지금도 대부분의 서아시아 국가들이 순니파를 추종하게 된 것이다. 


현대 서아시아의 지도를 살펴보면 각국의 국경선이 대부분 자를 대고 선을 그은 것처럼 일직선으로 이뤄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실제로 영국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주의가 현대 서아시아의 국경선을 확정한 것이다.

  

현대 서아시아의 지도 / 출처: 위키백과, <서아시아>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서아시아 지역을 석유 자원의 매장 여부를 기준으로 식민지화했다. 이 와중에 영국은 한 가지 결정적인 오판과 실수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영국은 홍해에서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해상 루트의 거점인 아덴(Aden)만을 점령하는데 그쳤다.) 등이 속한 아라비아 반도를 식민지로 취하지 않은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서아시아 최대의 산유국임에도 당시 영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막대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영국은 이미 유전이 발견된 이란과 이라크 그리고 해상 강국의 특성상 지중해에 접한 팔레스타인 지역에만 눈독을 들일 뿐 거대한 사막 지대로 불모지나 다름없는 아라비아 반도 내륙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미국의 스탠더드 석유 회사(Standard Oil Company)의 한 젊은 직원이 회장이었던 록펠러(John D. Rockefeller, 1839~1937)의 지시로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서아시아에 파견돼 석유 탐사 작업을 벌이던 중 아라비아 반도 내륙에 막대한 양의 석유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본사에 보고했다. 


이 보고를 받은 록펠러는 아라비아 반도의 석유 이권을 따내기 위해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미국 국무부에 영향력을 행사해 미국이 리야드(Riyadh,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의 술탄이었던 이븐 사우드(Ibn Saud, 1875~1953)를 지원해 반란에 나서도록 부추겼다. 


영국의 무관심 속에 신흥 강대국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븐 사우드는 메카의 왕 알리 빈 후세인(Ali bin Hussein, King of Hejaz, 1879~1935, 샤리프 후세인의 맏아들, 그도 부왕과 마찬가지로 친영파(親英派)였다.)을 몰아내고 헤자즈(Hejaz, 아라비아 반도의 서쪽 지역, 홍해에 접해 있다.) 지방을 차지하고 자신의 본거지였던 네지드(Nejd, 아라비아 반도의 동쪽 지역, 페르시아만에 접해 있다.) 지방과 합병해 나라를 세우니, 그 나라가 바로 사우드 왕가가 통치하는 아라비아라는 뜻의 ‘사우디아라비아(KSA: Kingdom of Saudi Arabia)’다. 


1933년 록펠러의 바람대로 사우드 왕가와 스탠더드 석유 회사가 합자해 설립한 회사가 오늘날 전 세계 시총 3위에 올라 있는 석유회사 ‘아람코(Aramco: Arabian-American Oil Company의 줄임말)’다. 이 일을 성사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스탠더드 석유 회사의 젊은 직원은 예일 대학교를 설립한 미국의 세대명가(世代名家) 예일 가문의 후계자 윌리엄 예일 3세(William Yale the third)였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책 표지, 출처: 예스24(yes24.com)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부친이 연이은 사업 실패로 가산을 탕진하자 생계를 위해 고모(그녀는 처녀 시절 세대명가의 규수로서 당시 청년 실업가로 명망이 높았던 록펠러와 잠시 교재 했었던 인연이 있었다.)의 소개로 스탠더드 석유 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서아시아에 파견돼 아라비아 반도 내륙에서 대규모 유전을 찾아낸 일이 계기가 돼 그는 석유 회사의 직원이자 미국 국무부의 스파이가 돼 서아시아 지역의 정황(政況)과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던 제1차 세계대전의 전황(戰況)을 탐지해 보고하는 임무도 함께 수행한다. 


그의 스파이 행각은 훗날 미국의 지원을 받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으로 이어졌다.(윌리엄 예일 3세와 관련된 사우디 왕국의 건국 비사(秘史)는 스콧 앤더슨 지음, 정태영 옮김, <<아라비아의 로렌스: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 글항아리, 2017에서 발췌했다.)

     

서아시아에서 이란을 제외하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프랑스 식민지가 된 지역에는 쉬아파 국가들이 생겨났다.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로 비록 사산조 페르시아(Sasanian Empire, 224~651: 조로아스터교가 국교인 나라였다.)가 아랍인들에게 군사적으로 정복돼 이슬람화 했지만 전통적으로 아랍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한 대제국이었다는 자부심이 강했다. 따라서 이란은 순니파 칼리파트에 반발해 쉬아파를 받아들였고, 사파비 왕조에 이르러 쉬아 이슬람을 국교로 지정한 이래 현재까지 서아시아에서 쉬아파의 종주국을 자부하고 있다. 


그밖에 쉬아파 국가들은 영국의 세력권 바깥에 있었다는 공통점 외에 무역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이 있다. 10세기 카이로를 수도로 삼아 이집트 근방을 지배했던 쉬아파 파티마 왕조가 수립된 이래 이슬람 세계는 중앙의 순니파 제국들을 사이에 두고 서쪽의 파티마 왕조와 동쪽의 이란 왕조가 병립하는 형세였다. 


중세 이란의 이스파한(Isfahan: 사파비 왕조의 수도였다.)은 실크로드 상의 주요 거점 도시 중 하나로 동서무역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이스파한의 쉬아파 대상(隊商)들은 순니파들의 방해로 아라비아를 통해 유럽 상인들과 교역할 수 있는 서아시아의 서쪽 지역으로 갈 수 없었다. 


이스파한의 상징 이맘 광장(왼편)과 카주 다리(오른편) / 출처: 나무위키, <이스파한>


쉬아파 상인들이 순니파를 피해 무역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순니파 지역을 북쪽으로 우회하는 육상 무역로(이스파한에서 출발해 이라크 북부와 터키 남부 접경지대(이 지역은 오늘날 ‘쿠르디스탄(Kurdistan)’이라 불리는 곳으로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랍인이 아닌 쿠르드족이 다수인 지역이다. 쿠르디스탄은 ‘앗시리아인(Assyrian: 아랍계 기독교도)’이라 불리는 기독교도(Christian)도 다수 거주하고 있을 만큼 종교적으로 자유로운 지역이다.)를 통과해 시리아까지 가서 다시 해안선을 따라 남하해 레바논이나 팔레스타인의 항구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루트)를 택하든지 아니면 배를 타고 페르시아 만에서 출항해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아라비아 반도를 돌아 아덴 만을 통해 홍해로 진출한 뒤 또 다른 쉬아파 무역 거점이었던 이집트(이집트는 본디 파티마 왕조 이래로 쉬아파 국가였으나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이후부터 순니파 국가로 전환되었다.)의 카이로(Cairo: 파티마 왕조의 수도였다.)로 향하는 바닷길을 이용해야만 했다. 


오랜 기간 상인들의 잦은 왕래로 자연스레 이 두 무역로 상에 있는 지역들에는 쉬아파들이 정착해 살기 시작했고,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오늘날에도 이란은 물론이거니와 북쪽 육상 무역로 선상에 위치한 시리아와 레바논이, 그리고 남쪽 해상 무역로의 중간 거점 역할을 했던 바레인, 예멘(아덴을 끼고 있는 북예멘 지역만 쉬아파이고 남예멘은 순니파 지역이다.) 등이 쉬아파 국가된 것이다. 

     

물론 순니와 쉬아를 막론하고 전 국민이 모두 순니파이거나 쉬아파인 경우는 없다. 주요 쉬아파 국가인 이란은 약 90%, 이라크(압바스 왕조에서부터 현대의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Abd al-Majid al-Tikriti, 1937~2006)에 이르기까지 지배층은 계속해서 순니파였다. 이라크 전쟁 이후 사담의 바트당(Ba'ath Party) 정권이 몰락한 이후 현재까지 쉬아파 정권이 집권하고 있다.)는 남부를 중심으로 약 65%, 시리아(시리아는 이라크와 대조적으로 소수의 집배층만 시아파일 뿐 국민 대다수는 순니파이다.)는 약 15%, 레바논은 다종교 국가로 전 국민의 약 50%가 무슬림이고 그중 절반이 쉬아파이다.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Hezbollah)가 바로 쉬아파이다. 내전을 겪고 있는 예멘은 후티(Houthi)  반군이 주축이 된 북부에 35%가 쉬아파이고 남부의 65%는 순니파이다. 바레인 역시 이라크와 유사하게 왕족을 포함한 지배층은 순니파(20%)인데, 국민 대다수(약 50%)는 쉬아파이다.


출처: 노석조, '수니파·시아파, 1400년째 왜 싸우나', <조선일보>, 2016-01-05.





<제 4 장  끝없는 순니와 쉬아의 갈등과 대립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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