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물안전관리법의 개정이 필요합니다.
30년 전, 우리는 이렇게 들었었다.
머지않아 석유시추량은 고갈되고, 그 사용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마주하는 현실은 다르다. 시추와 채굴 기술은 오히려 발전했고, 석유는 여전히 산업 현장의 주된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저장하고 취급하는 위험물시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 존재한다.
나는 위험물시설의 허가, 점검, 사고 대응을 반복해 왔다. 그 과정에서 현장은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위험물안전관리법은 오랫동안 존재해 왔으면서도, 위험물시설의 설계·시공·감리에 대해서는 ‘누가 해야 하는지’조차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는가.
위험물 화재는 발생 빈도는 낮다. 그러나 한 번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 규모와 파급력은 일반 화재와 비교할 수 없다. 실제로 그동안 크고 작은 위험물 사고는 반복되어 왔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관리 소홀을 넘어 설계와 시공 단계에서부터 누적된 구조적 문제가 적지 않다.
20여 년 전의 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백발에 걸음도 불편하신 노인께서 삼각자와 로터링펜으로 손수 그린 도면을 들고 위험물시설 허가 신청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설치자의 위임장도 없이 누군가가 손으로 그려온 위험물도면을 접수하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검토 과정에서 많은 도면 수정이 뒤따랐다.
문제는 그 경험이 과거의 일화로만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도 일부 위험물시설은 충분한 공학적 검토 없이, 관행과 경험에 의존해 설계되고 시공되고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이를 막을 명확한 기준이 없다.
일부에서는 소방시설 설계업을 등록한 자가 위험물시설 설계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전문성이 확보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면 이는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 소방시설과 위험물시설은 적용 법령부터 다르다. 소방시설 설계자가 수행하는 검토는 위험물시설에 설치되는 소방시설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저장 구조와 공정 설비, 위험물의 물성 및 반응 특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는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업역과 책임을 구분하지 않은 구조의 문제다.
현행 위험물안전관리 체계는 위험물 안전관리자 선임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는 사고 이후의 대응과 운영 관리에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사고 이전 단계인 설계·시공·감리의 안전성 확보에는 분명한 공백이 존재한다. 소방시설에 비유하면, 설계와 시공, 감리는 없이 소방안전관리자만 두는 구조다. 현장에서 보면 방어체계의 가장 아래층만 강화된 셈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소방공무원만의 고민이 아니다.
소방기술사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 역시 위험물시설 설계·시공·감리에 대한 등록제 도입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위험물시설은 고도의 공학적 판단과 경험을 필요로 하며, 이는 자격과 책임이 명확한 전문가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 사회의 공통된 인식이다.
소방공무원의 입장에서도 이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위험물시설의 설치 허가와 변경 업무는 소방서에서 담당하지만, 업무 담당자는 순환보직으로 자주 교체되고 모든 위험물 유형에 대해 깊이 있는 전문성을 갖추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설계와 시공의 적정성까지 행정이 모두 떠안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설계·시공·감리는 전문가 집단이 책임지고, 소방공무원은 이를 감독·관리하는 역할에 집중하는 구조가 오히려 행정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높인다.
소방시설공사업법은 이미 설계·시공·감리에 대해 명확한 등록 기준과 기술 인력 요건을 두고 있다. 위험물시설은 그 위험성과 사고 파급력을 고려할 때, 최소한 그에 준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소방기술사와 위험물기능장 등 전문 자격자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명확히 하여야 한다.
우리가 설치하는 대부분의 소방시설은 재난을 ‘예방’하는 시설이 아니라, 재난이 발생했을 때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응’ 시설이다. 진정한 예방은 설비가 아니라 제도에서 시작된다. 위험물시설이 안전하도록 만드는 제도를 갖추는 것, 그것이 결국 가장 확실한 예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