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등 설치높이를 개정해야
작년 겨울, 건물안의 불을 끄고나서
복도에 퍼졌던 짙은 연기가 서서히 걷히고,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 작은 불빛이 있었다.
그것은 벽면 끝자락에 매달려 있던 피난구 유도등이었다.
이미 연기에 파묻혀 한참 동안 보이지 않았던 그것을 보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저 위치가 정말 맞는 걸까?'
현재 우리나라의 유도등 설치 기준은 NFPA 101(미국 인명안전기준)과 유사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NFPA는 유도등을 지면으로부터 2m 이하, 대형 공간에서는 1.5m 이상에 설치하도록 한다.
이는 연기와 열의 흐름을 고려한 결과다.
하지만 한국의 NFPC 303은 유도등을 1.5m 이상에만 설치하라고 규정한다.
문제는 이 기준이 실제 화재 현장에서는 가시성과 내열성 면에서 불리하다는 점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천장 부근에 연기와 열이 먼저 쌓이고, ‘천장제트흐름(Ceiling Jet Flow)’이 생긴다.
이때 연기층은 약 30cm 두께로 형성되고, 그 안에는 스프링클러나 감지기 같은 장비가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유도등까지 이 연기층 안에 있다면?
가시성 저하
유도등이 연기 속에 묻혀 피난자가 불빛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열에 의한 손상
고온의 연기층 안에서는 유도등이 쉽게 고장 날 수 있다.
층고가 높은 공간의 시인성 부족
대형마트 같은 공간에선 유도등이 높이 매달려 있어도 멀리선 보이지 않는다.
유도등의 설치 기준은 연기층을 피해 설치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NFPA 101처럼 연기 아래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한 위치, 예컨대 **시각경보장치와 동일한 높이(보통 2m 이하)**가 적절하다.
특히 대형 공간의 경우, 층고에 따라 유도등의 위치를 설계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부여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화재 현장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하지만 현재 유도등 기준은 이 원칙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기준을 따르는’ 것을 넘어, ‘기준을 다시 질문하는’ 태도가 필요한 때다.
작은 불빛 하나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소한 변화가 생명을 살리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
현업부서를 떠난 지금,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짜 필요한 변화를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경제성보다 안전성을 우선하는 소방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