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세상이 말하는 많은 것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말하는 일들이 정작 나에게는 이유 없이 느껴졌고, 그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누구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항상 마음속에 작은 묘한 불편함을 품고 있었다. 내가 틀린 건지, 세상의 말이 이상한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동네 친구들과 놀 때도 그랬다. 아이들이 만든 규칙은 허점투성이였고, 그 규칙들이 어떻게 해서 당연한 것이 되는지 깨닫지 못했다. 나는 규칙의 모순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왜 이렇게 해야 해?”, “이건 말이 안 되는 거 아니야?”라고 물었다. 친구들은 곤란해했고, 나는 왜 곤란한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재밌자고 만든 것이라 했지만, 나에게는 이유 없이 따라야 하는 놀이라는 것이 계속 낯설었다.
공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공부를 하면 미래가 좋아진다’는 이유는 아무리 들어도 내게는 공허했다.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공부가 그 미래와 연결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공부는 내 자존심을 높이는 수단 정도로만 느껴졌다. 내가 남들보다 낫다는 느낌을 받으며 기분이 나아지는, 그 정도의 의미였다. ‘왜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사람을 사귀는 일도 답이 없었다. 모두와 잘 지내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들 했지만,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굳이 많은 사람과 가까워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이 생기자, 나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했다. “굳이 많은 사람을 사귀어야 할까?” 마음 맞는 친구 몇명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질문만 늘어가고 답은 돌아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른들의 대답은 “원래 그런 거야” 정도의 공허한 말로 들렸다. 명확한 인과관계 없이 추상적인 설명만 있는 말들은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그 세계에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다.
그리고 어느 날, 질문만 남고 설명은 없는 그 모든 순간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아주 조용한 결론을 내렸다. ‘이 길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 말은 큰 다짐이 아니었고, 어쩌면 반항이었을 수도 있다. 그냥 어린아이가 자기 방식대로 세상을 바라본 끝에 남은 가장 솔직한 생각이었다. 나는 그저 이해되지 않는 것들 속에서 오래 서 있지 못했고, 그래서 나만의 길을 찾고 싶었다. 아니, 찾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해되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내 첫 번째 질문의 시기는 끝나고, 나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아주 조용히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