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틈을 찾는 아이
나는 세상이 들려주는 말들이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씩 직접 들여다보기로 했다. 깊이 생각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이대로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어른들이 주는 대답은 늘 모호해서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 나는 내가 본 그대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먼저 놀이다. 친구들과 하는 놀이는 규칙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았다. 어떤 규칙은 금방 깨지고, 어떤 규칙은 서로 맞지 않았다. 나는 그 허점들이 계속 마음을 건드렸다. 그래서 미완성인 놀이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그냥 하면 되는 거라고 했지만, 나는 ‘그냥’이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완성된 규칙이 있고 끝이 정해져 있는 놀이만 고집하게 되었다. 그게 어린 나름대로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예배에서는 사랑과 용서를 말했지만, 사람들은 서로에게 차갑게 대하기 일쑤였다. 말과 행동이 이렇게 다른데 왜 모두가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린 나는 단순하게 결론 내렸다. “아, 이 교회는 가짜구나.” 그 생각이 들자 더 이상 의문을 품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교회를 바꾸기로 했다. 거짓처럼 보이는 곳에 계속 있고 싶지는 않았다. 바꾼 교회에서는 이전만큼 불편한 느낌을 받지 않았다.
공부도 답을 찾지 못했다. ‘미래에 좋다’는 어른들의 설명은 내게 너무 멀고 흐릿했다. 그래서 공부는 그저 내 자존감을 채우는 도구처럼 느껴졌다. 적당히 해도 성적이 잘 나오고, 주변 사람들과 다르다는 느낌은 어린 나에게 충분한 만족을 주었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점차 공부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을 억지로 붙잡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저 자랑할 만한 수준의 성적만 유지했다.
사람을 사귀는 문제는 더 어려웠다. 모두가 친구를 많이 사귀는 것이 좋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일이 왜 중요한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친구 관계가 어려워지자, 나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특이해서 그렇겠지.” 그게 가장 간단한 설명이었고, 어린 나는 복잡한 이유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각자 다른 곳에서 생긴 의문들은 결국 한자리에 모였다. 어른들은 이유 없이 “그냥 그래야 한다”라고 말했고, 나는 그 말을 끝까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내 방식대로 단순한 결론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 결론들이 완벽한 건 아니었지만, 어린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에게는 설명이 필요했고, 어른들은 설명을 주지 않았으니까.
그때 나는 아직 ‘길’이라는 개념을 몰랐다. 다만 세상이 정해놓은 방식이 나에게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만 느꼈다. 그리고 그 작은 감각이 점점 커지면서, 나는 세상이 말하는 길을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는 몰랐지만, 어딘가에 틈이 있다는 느낌만은 분명했다. 어린 나에게는 그 느낌이 전부였다. 그렇게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채로, 조금씩 길의 존재를 느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