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행복

칸트의 행복

by 무로

칸트에게 행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목적이지만, 그 의미는 매우 불확실한 개념이다. 그는 행복을 “욕망과 삶 전체가 완전히 맞아떨어진 상태”라고 정의했지만,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하며, 시간이 흐르면 그 욕망도 변하기 때문에 행복을 객관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결국 행복은 감정과 욕망에 종속된 목표이며, 이성적 원칙의 기반이 되기에는 너무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이 칸트의 판단이었다.

이 때문에 칸트는 “행복을 기준으로 도덕을 세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누군가의 행복을 기준으로 하면 보편적 원칙이 만들어질 수 없고, 개인의 욕망이 충돌할 때 도덕은 방향을 잃게 된다. 그래서 그는 행복보다 도덕(의무)을 우선에 놓는다. 도덕적 행위란 내가 원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는 무관하게 “이성이 보편적으로 옳다고 판단한 것”을 따르는 데서 비롯된다. 즉, 칸트에게 도덕적 가치는 욕망과 상관 없는, 순수한 의무의 실천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칸트는 행복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이상적인 삶을 “도덕적 삶과 행복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 즉 최고선(Summum Bonum)이라고 불렀다. 현실에서는 의무를 다해도 불행할 수 있고, 욕망을 좇아도 행복할 수 있지만, 인간의 이성은 두 세계가 일치하기를 요구한다. 칸트에게 궁극적 행복이란 욕망과 의무가 충돌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는 순간이다. 이것이 인간이 지향해야 하는 도덕적·실존적 이상에 해당한다.

칸트의 최고선에 관한 설명을 읽어보면, 나도 어느 정도 그 생각에 동의하게 된다. 인간이 진정한 만족을 느끼는 순간은 해야 하는 일이 나의 욕망과 대립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완전히 합쳐지는 삶은 드물겠지만, 그 비율이 커질수록 삶이 더 안정되고 의심 없이 흘러갈 것이라는 점에는 분명 설득력이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이 의무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일 중에는 해야 하는 일과 겹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나는 금욕적인 사람도 아니고, 오직 의무만을 좇아 살아온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무를 다했을 때 느껴지는 안정감이나 만족감은 분명히 있다. 책임을 완수했다는 감각이 나에게는 하나의 행복이 된다. 그래서 두 영역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겹쳐 있을 때, 나는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덜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서 모두 허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욕망은 충족시키는 순간 나를 무너뜨리고, 삶의 균형을 흐트러뜨린다. 나는 그런 욕망을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다르더라도,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욕망을 걸러내고 정제하는 과정이 결국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에 가깝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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