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길

15. 인생에 쉬운 길이 있을까?

by 무로

니체는 고통을 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가 경계한 것은 고통이 없는 삶을 목표로 삼는 태도였다. 삶에는 필연적으로 부담이 따르며, 그 부담을 제거한 선택은 대개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대신 좁힌다. 이 문장이 묻는 것은 편한 선택이 가능한지가 아니라, 우리가 쉬운 길이라고 부르는 선택이 정말로 쉬운지에 대한 의문이다. 혹시 그 길은 부담을 뒤로 미뤄 둔 선택은 아닐까.


나는 현재의 지위에 만족하는 나의 태도가 경쟁을 회피하는 선택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한 경쟁이 내 삶에 특별한 가치를 더해 줄 것 같지 않다고 느꼈고, 그래서 현재의 자리에 만족하고 있다. 굳이 더 위로 올라가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유지되고, 지금의 위치에서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선택은 겉으로 보면 경쟁에서 한 발 물러난 결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판단이 언제나 나를 설득하지는 못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높은 자리를 원하지 않는 이유는 정말로 그 보상이 나에게 무가치하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경쟁이 요구하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부담이 두려워서 애써 의미를 낮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 앞에서 지금의 선택은 단순한 만족이 아니라, 의심을 동반한 태도가 된다.

경쟁의 보상이 나에게 의미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 선택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제가 분명해야 한다. 나는 그 경쟁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가, 그리고 감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치를 선택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선택은 가치 판단이 아니라 두려움이 만든 합리화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문장은 나에게 안심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선택이 어떤 기준에서 나왔는지를 끝까지 묻게 만든다. 경쟁을 피하는 것과, 경쟁의 의미를 묻는 것은 전혀 다른 태도다. 전자는 부담을 줄이려는 선택이고, 후자는 삶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려는 시도다. 문제는 이 둘이 외형상 거의 같아 보인다는 점이다.

나는 아직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의 방향을 ‘쉬운 길’이라 규정하는 순간, 나는 이 선택이 진정한 가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을 감춘 결정인지 더 이상 묻지 않게 된다. 지금의 길이 효율적인 선택인지, 혹은 부담을 미래로 미룬 결과인지는 반드시 점검해야 할 문제다. 이 확인을 멈추는 순간, 쉬운 길은 가장 위험한 길로 바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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