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순간
그렇게 한동안 아무 문제 없이 지냈다. 게임을 하고, 공부는 미루고, 교회는 끊고, 아는 친구들 몇 명과만 지내며 시간을 보냈다. 하루하루는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 나를 편하게 해 주었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어느 날부터 조금씩 다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주 미세한 변화였는데, 그걸 느낀 건 다른 누구도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가장 먼저 성적에서 이상함이 느껴졌다. 시험지를 받았을 때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점수를 보는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이유는 몰랐다. 그냥 숫자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이 바로 느껴졌다.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이렇게 된 걸지도 모르지만, 그날은 단순히 점수가 낮다는 사실보다도 ‘내가 뭔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시험지를 들고 있는 내 손이 이상하게 무겁다고 느꼈다. 그게 첫 번째 충격이었다.
몸에서도 변화가 느껴졌다. 예전에는 금방 일어나던 아침이 유난히 힘들어졌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피곤함이 쉽게 찾아왔다. 딱히 큰 병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신호가 매일 조금씩 쌓였다. 누구에게 말한 적도 없고,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알고 있었다. ‘뭔가 예전 같지 않다.’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급식실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나를 보며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외롭다고 하기도 어렵고, 괜찮다고 하기도 어려운 감정이었다. 마음 맞는 몇 명은 여전히 편했지만, 그 외의 사람들과는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도 점점 힘들어졌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 알았다. ‘내가 많이 멀어졌구나.’ 누가 나를 외면한 것도 아니고, 내가 누구를 밀어낸 것도 아닌데, 그냥 거리가 생겨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따로 보면 작은 변화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모든 것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다. 떨어진 성적, 무거운 몸, 멀어진 사람들, 그리고 그런 변화들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게임만 하고 있는 나. 이유를 모르는 변화들이 동시에 밀려오자 마음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도 정리되지 않았고, 판단도 서지 않았지만, 단 하나는 분명했다. 뭔가 크게 달라졌다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더 충격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조용한 충격을 받았다. 누가 알려줘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느껴서 온 충격이었다. 내가 벗어난 길을 완전히 잊고 지내던 사이, 내 주변과 내 안쪽에서 작은 균열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이 마음속 어딘가에 깊게 남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했고, 돌아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 한동안 멈춰 서 있었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고,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는 상태로. 그저 충격만이 또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