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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필 Aug 05. 2022

타인은 지옥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 대한 짧은 글

네 맘이 내 맘 같지 않아 슬픈 날이 있다. 




마음은 왜 항상 엇갈리는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지. "가난하게 사랑받고만 싶어, 깊은 마음에 기뻐하게"라는 노랫말처럼 우리는 그저 사랑받고 싶다. 아니 적어도 사랑을 흠뻑 주고라도 싶다. 하지만 상대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마음만으론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 나와 타인 사이에 상존하는 마음의 부조화는 인간관계, 특히 사랑의 시작 과정에서 흔히 관찰된다. 


상대방이 현재 나를 사랑하는 것도 그가 자유로운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그가 나를 버리는 것도 역시 그의 자유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지옥, 그것은 타자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타자란 치명적이지만 동시에 멋진 지옥 아닌가?

강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 p.138(사계절)


사르트르는 사람과 같이 자유의지가 있고 항상 무언가를 의식하는 존재를 대자적 존재라고 했다. 반대로 사물과 같이 자유의지나 개별적인 의식이 없고 있는 그대로 인식되는 존재가 즉자적 존재이다. 즉자적 존재를 사랑하는 것엔 부담이 없다. 가령, 커피를 사랑한다고 해보자. 아침에 일어나 노곤한 몸을 이끌고, 내려 마시는 커피 한 잔에는 어떠한 의도도 의식도 없다. 내가 내리는 대로 내가 마시는 대로, 커피는 오롯이 나의 사랑의 대상이 된다. 어떤 불안도 틈입할 수 없는 나의 사랑은 즉자적 존재에 완연히 가닿고, 커피는 사랑받을 수 있는 그 자리에 언제나 놓여 있다.


하지만 대자적 존재인 인간은 어떠한가. 타인의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 타인을 사랑하는 것까지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철학자 강신주는 사르트르의 표현을 빌려 "타인은 지옥"이라 강조했다. 나의 사랑이 자유 의지에 따라 나의 마음을 충실히 따르듯, 타인의 사랑도 스스로의 마음을 충실히 추종한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이유와 적이 무관하고, 나와 타인은 대부분의 면에서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에게 서로 다른 의지가 있으니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건 도무지 쉽지가 않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는 나에겐 명백하게 지옥이다.



그럼에도 타인은 "치명적이지만 동시에 멋진 지옥"이다. 즉자적 존재에 대한 사랑은 안정적이고 편안하긴 하지만 그렇기에 피상적이고 적잖이 도구적이다. 일방적이고 강요된 행위는 상호적 사랑의 양태라기보다는 폭력적인 구애의 모습을 띤다. 하지만 대자적 존재인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는 일은 그 자체로 얼마나 신기하고도 벅찬 일인가. 서로가 자유로운 의지로 서로를 사랑하는 일, 아무런 외력 없이 서로에게 들이는 마음은 타인과 타인이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충만한 결과일 것이다.




바람이 분다 시린 향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이소라 <바람이 분다> 中



그대가 내가 아니기에 역시 타인은 지옥일까. 사랑에 실패해 슬픔에 허덕일 때 겪었던 경험은 꽤나 선연했기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는 명백히 지옥일 것만 같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모든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 역시 타인이다. 수많은 지옥을 겪다가 마침내 상호 간의 사랑이라는 결과를 맞을 때에야 우리는 마침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랑을 포기하는 것 역시 지옥일 테니까. 그렇기에 지옥불에 떨어진대도 끊임없이 지속되는 구애의 몸짓은 유일한 구원인 사랑에 대한 본능적인 희구일 것이다. 말이 길었지만 어쨌든 사랑하자. 까지고 미어져도 쓸리고 무너져도. 해묵은 표현이지만 결국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그렇기에 그럼에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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