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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필 Aug 12. 2022

<뷰티 인사이드> 우리의 기억, 그래서 우리

#11 백종열, 뷰티 인사이드(2015)

※ 이 글을 포함한 모든 글은 알게 모르게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진은 18살의 어느 날부터 매일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뀐다. 아니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른 사람이 된다. 매일 몸이 달라져 다양한 신체를 경험한 우진은 맞춤형 가구를 제작해 제법 성공한 가구 디자이너가 된다. 그렇게 삶에 익숙해지던 우진은, 단골 가게에서 일하는 이수(한효주)가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같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우진의 진심 어린 고백에 이수도 마음을 열지만 매일 외모가 변하는 우진의 모습에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우진과는 미래를 약속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수는 점점 힘들어한다. 힘들어하는 이수를 위해 결국 우진은 이별을 통보한 채 사라져 버리고 이수는 우진을 찾아 나선다.

이수(한효주)와 우진(박서준)

<뷰티 인사이드>는 화면의 아름다움에 심취하고, 우진과 이수와의 단일한 관계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진폭은 좁아지고 수많은 배우들의 호연이 공허해진다. <뷰티 인사이드>라는 영화 제목에 부합하지 않게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심층적인 담론을 펼치지 못하고, 영화는 단지 예쁜 이미지소비된다. 아쉬움이 제법 느껴지지만 변화하는 우진과 그를 보며 불안해하는 이수의 관계를 곱씹어 보며 '우리'라는 관계는 무엇에서 파생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우진(이진욱)과 이수(한효주)


우리가 우리임을 확인하는 방법

우진의 엄마를 제외하고 우진이 매일 변화한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우진의 절친한 친구인 상백(이동휘)이다. 상백이 우진의 말을 믿지 못하고 눈앞에 중년 여성이 우진임을 확인하기 위해 처음으로 한 은 "우리가 삼거리에 가면 자주 어딜 가죠?"라는 질문이다. 또한 여자(천우희)로 변한 우진이 이수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던 날, 아연실색하는 이수에게 자신이 우진임을 확인시키려고 꺼낸 말은 우진과 이수가 함께 의자에 대해 나눈 이야기와, 우진의 공장에서 함께 초밥을 먹으며 들었던 음악이다.

상백(이동휘)과 또 다른 우진(이재은)


실제로 우리는 어렴풋이만 알 것 같은 누군가를 확인할 때 서로의 기억을 대조해본다. 오래전 친구를 만나 얘기를 할 때, 우리는 예전에 같이 겪었던 추억을 하나씩 꺼내며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다. 세월에 깎여 겉모습을 낯설 지라도 몇 마디 기억의 공유로 서로가 서로임을 확인하고 나면 금세 예전처럼 막역해진다.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공유된 기억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될 때 우리는 우리를 우리로 인식한다. 서로가 함께 기억하는 부분이 우리의 과거를 구성하고 축적된 과거가 우리라는 막연한 개념의 구체적인 실증이 되는 것이다. 우리를 우리로써 기능케 함에 공유된 기억이 불가결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사랑의 관계 또한 함께한 기억들공고해진다.



사랑, 기억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은 걸까? 날마다 같은 모습을 하고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흔들렸던, 어쩌면 매일 다른 사람이었던 건 네가 아니라 나였던걸 아니었을까?
- <뷰티 인사이드> 中 이수의 대사 -


이수의 대사처럼 '나'라는 개인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기억은 언제나 흔들린다. 우진의 얼굴만큼이나 매일 어떻게 변할지 예상치 못하는 것은 이수의, 우리들의 마음이다. 불안하게 나부끼는 믿음과 조마롭게 흔들리는 마음을 굳건하게 붙잡고 있는 것은 서로에게 남아 서로를 연결시키는 따뜻한 기억이다. 우리의 사랑이 끊임없는 변덕과 마음속 소요에도 계속될 수 있는 건 둘 사이를 굳건하게 해 줄 단단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부단히 변해가는 세상과 꾸준히 흔들리는 우리들 사이에서도 사랑은 제법 튼튼하게 유지된다. 

"난 이 안의 김우진을 사랑하는 거니까" 우진이 매일 변해도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수의 대사처럼 우리는 무수한 흔들림 속에서도 사랑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 아니 더 깊숙이서 공유되는 '우리 기억 안의 우리를 사랑하는 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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