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비건'을 읽고

어미소와 송아지의 비극

by 체리코코

독서모임의 이번 달 책이라서 읽은 '아무튼, 비건'.


사실 난 비건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날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나는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다른 반찬 하나 없이 고기랑 밥만 해서 먹는 사람이니까. 백반을 돈 주고 먹지 않고, 메인이 되는 뭔가가 없으면 맹숭맹숭하다고 느끼는 게 나다.


그렇게 나는 채식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딱히 거기에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는데... 이게 바로 책의 순효과인 걸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건이 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 책은, 그게 거의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로, 꽤나 공격적이다. 이렇게 대놓고 '너는 틀렸고 내가 맞다.'며 주야장천 말하는 책은 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왜 네가 틀렸으며, 내가 맞는 것인지에 대해 철저히 근거와 논리를 베이스로 설명한다.


물론 그 목적은 나는 옳은 사람이라며 뽐을 내는 것이 아니다. 니 행동이 잘못되었으니 바꾸라고 지적하려는 것이다. 그게 옳은 행동이기 때문에. 사람을 노예로 취급하는 게 잘못된 것처럼.


이렇게까지 일관도로 강력하게 외치는 사람을 보는 것은 (그것도 이렇게 정성 들여서) 오랜만이었고, 사실 가벼운 에세이 정도려니 생각하고 핀 책에서 이런 내용을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충격을 받으며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던 것 같다.


솔직히 나는 평소에 '옳고 그름'에 그렇게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도 아니다. 반대로, '규칙이라는 건 나에게 필요에 따라 어길 수 있고, 애초에 규칙을 만든 본질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거라 그것만 지키면 된다, 그리고 그 본질의 내용에 따라 무조건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 기준 무의미한 규칙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지키라고 하면 강요와 통제라고 느끼며 불합리하다는 생각과 반발감이 든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융통성이 없고 꽉 막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놓고 이걸 표출하진 않지만, 왜냐면 그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성향의 사람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거부감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어느 정도 동조가 됐다. 비건이 옳다고 말하는 그 본질에 공감이 갔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기억에 남는 대목은 강제로 떼어지는 어미소와 송아지, 그리고 송아지는 연한 고기가 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가둬지고, 어미소는 계속 젖을 생산하기 위해 임신을 반복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송아지를 떼어놓는 순간 어미소와 송아지의 눈을 묘사하는 대목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 광경을 상상해 보게 됐고, 실제 영상으로 본 것도 아닌데도 그 상상된 장면은 독후감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 잘 남아있다. 정말 잔인한 일이다.


책은 제일 첫머리에서 '타자화'라는 단어를 설명하며 시작된다. 나와는 관계가 없는 별개의 것, 이라고 다른 것을 나와 구분하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어렸을 때는 동물이 불쌍하다며 고기를 안 먹는 경우도 많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는 것도, 동물은 인간과 다른 것이라고 그냥 타자화해 버린 결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참 맞는 말인 것 같다. 예전에 인도에서 기차 하나가 아예 전복되어 수십? 수백 명이 죽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실 엄청나게 끔찍한 일인데, 그에 대해 크게 감정이 요동치지 않는 나를 보며 '아 정말 딴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구나', '나랑은 관계없는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정말 아무 감흥이 안 드는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내가 약간은 혐오(?)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나는 다른 사람의 팔이 잘린 것보다 내 새끼손가락에 가시 찔린 게 더 아프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것 같다. 아프리카 기아들, 쓰나미로 죽은 사람들, 하다못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이재민, 다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고, 난 그냥 일상을 살아간다. 그렇게 훈련이 되어 가는 것도 같다. 이 세상에 발생하는 수많은 일들에 하나하나 관여하며 살 수는 없으니까. 합리화일 수 있고 또 실제로 그것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부어가며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1) 그건 소수며, 2) 어떻게 보면 이해가 안 가는 바보 같은 행동이고, 3) 그 사람도 결국 남을 돕는 나에 취한 사람이다라며, 이렇게 사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수많게 쏟아지는 비극적인 뉴스에 일일이 다 반응하면서는 살 수가 없기에 그렇지 않게 훈련되는. 그리고 이건 개인적으로 내 어렸을 때 경험상 셀프훈련한 부분이기도 하고.


한편, 나는 요즘 유기견 관련 봉사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시보호소에 입소한 아이들의 임보/입양을 신청한 사람들을 상담하고 심사해 유기견을 입양 보내는 봉사활동과, 봉사단체에서 마련한 공간에 머물고 있는 봉사단체가 직접 구조한 아이들을 보살피는 봉사활동이다.


사실 나는 강아지를 좋아하긴 하고, 실제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와 함께 해 아주 익숙하며, 사람에 대한 기부는 안 해도 동물에 대한 기부는 하던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극진한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적어도 쉼터(봉사단체에서 마련한 강아지들을 위한 공간의 명칭)에 오는 다른 봉사자들에 비하면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 이 봉사활동을 계속 이어가면서 느낀 건, 어떻게 보면 타자화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특히 최근 단체에서 번식장을 쳐 몇십 마리의 강아지들을 구조한 적이 있는데, 구조를 하고 나서 보니 그 아이들에게는 정부에서 안락사를 권고되는 번식장병이 퍼져있더랬다. 안락사가 권고되는 이유는 이 병의 경우 특성상 완벽한 완치가 어렵고, 사람도 같이 감염이 될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이 아이들의 입양은 불가능한 게 아닌가? 몇 십 마리의 아이들을 앞으로 10년 넘게 쉼터에 두고 보살피는 호스피스 보호를 할 게 아니라면, 결국 이 아이들의 안락사를 생각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그걸 가장 가치 있게 전략적으로 써야 되지 않을까? 가장 이슈업이 되어있는 지금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행동을 해야 되는 것 아닐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강아지들이 귀엽고, 평생 가족을 찾으면 좋고, 보람차고, 이 일을 하고 있지만 결국 나와는 떨어져 있는 감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근데 단체의 결정은 달랐다. 그리고 단체의 여러 다른 봉사자들은 이런 말을 했다. '이 생명한창 멘붕인 상황에서도 '일단은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라는 결정을 했다. '이 생명들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 '너무 불쌍하다', '어떻게 되든 절대 이 아이들을 죽일 순 없다'며.


사실 나도, 이 생명이 너무 소중하고, 예를 들어 내 가족이었다면, 무슨 병에 걸렸고 미래에 큰 난관이 예상되건 간에 어떤 큰 뜻을 위한 죽음이 가능하다는 전제조차 하지 않았겠지. 그들의 죽음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또한 신선했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로 이 생명들을 소중하게, 어떻게 보면 자신처럼 생각하는구나.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그때가 생각났다. 나는 타자화를 하고 있었고, 그 사람들은 아니었나 보다.


쓰다 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진 것 같은데, 요는 이 책을 읽으며 그 '타자화'가 아주 약간은 깨졌다는 거다. 저자가 워낙 강하게 돌을 던지듯이 강하게 외쳐주어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논리와 데이터라는 돌과 눈앞에 바로 떠오르는 생생한 장면의 묘사라는 도끼를 가지고. 넌 한낱 '혀 끝의 감각'을 위해 그 잔인한 일들에 대해 눈을 감는 사람, 이라는 비난은 너무나 맞는 말이었다.


나는 딱히 삶을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편의 사람이다. 근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비건으로 사는 것이 내 삶에 의미 있는 활동을 하나 더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당장 완벽한 비건이 될 수는 없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은 잘 안 들긴 한다. 하지만 의식을 가지고 조금씩 노력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저자는 비록 애매하게 하면 그냥 흐지부지 되지 확실하게 룰을 정하라고 했지만.)


요즘 다이어트를 하느라 닭가슴살을 많이 먹는데, 그걸 대두와 두부로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내 돈으로 고기 안 먹기는 어렵지만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달걀 같은 간편식도 대체해야 돼서 많이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부가적으로 나온 환경 보호에 대해서는, 부끄러운 일일지 몰라도 사실 이 부분은 이미 늦은 것 아닌가, 거대한 흐름에 내가 뭘 한다한들 크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크긴 해서... 덥지만 참고 에어컨을 안 튼다던지, 모든 배달용기를 아주 빡빡 깨끗하게 씻어 분리수거를 한다던지, 해외여행을 안 간다던지 등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텀블러 가지고 다니기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결론적으로, 최근 들어 읽은 책 중 제일 마음에 울림을 준 책이었다. 내 주변에는 책을 좋아하고, 섬세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덧. 예전에 페미니즘 관련하여 친한 지인에게 '너는 이게 남일 같아? 니 일 같이 느껴지지가 않아?'라는 말을 듣고 나는 약간의 반발심을 섞어 '안타깝다고는 생각해. 하지만 내 일이라고 느껴지진 않아. 내가 직접 경험을 한 일이 아니니까.'라고 답변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 지인이 나를 서서히 멀리했다고 느꼈고, 그렇게 멀어졌다. 그게 중요한 사람이었고, 내 답변은 그 사람에게 매우 실망을 주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편 당시 나는 당시 '내가 내 일처럼 공감을 못한다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인가', '자기처럼 생각하기를 강요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사람은 아마 내가 타자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싫었나 보다. 타자화를 하지 않고, 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게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혀 끝의 감각을 위해 그 잔인한 일이 벌어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육식을 하는 사람을 보는, 한심함과 경멸을 담은 비건의 눈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도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덧 2. 비건을 실천하며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던 지인이 있었는데, 무심코 '아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갔었다. 지금 와서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시구나 말해드렸으면 좋았겠다 싶다. 생각난 김에 몇 년 동안 연락 안 한 사람이지만 카톡으로라도 말해야겠다. 응원한다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복직 2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