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고 구원하기의 반복: 분열의 시작
※ 이 글에는 영화 《파이트 클럽》의 핵심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린과 슬기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기 전에 그들의 분열을 응시해 보자. 나레이터와 타일러처럼 두 사람은 실은 하나였다. ‘파이트클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분열을 통해 다정해질 용기를 지닌 아이린과 상대를 망치고 구원하기를 반복하는 슬기가 탄생했다.
한 개인의 선함과 악함은 2022년 10월 4일에 발매한 슬기의 첫 솔로 앨범 ‘28 Reasons’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우선 슬기의 ‘28 Reasons’를 조금 더 뜯어보자.
이 노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휘파람 소리이다. 노래의 곳곳에 휘파람이 나오는데, 이는 어두운 곡 분위기와 다르게 경쾌하다. ‘파이트클럽’에서 타일러가 나레이터를 놀리는 것처럼, 휘파람 소리는 선한 자아를 향한 악한 자아의 여유로운 조롱처럼 들린다.
“선한” 그리고 “악한”사람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선”과 “악”은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 어떤 사람이 선해 보일지라도 “욕망”과 “유혹”은 언제나 그 안에 함께 있다. 우리는 그저 “악”에 사로잡히는 것에 “저항하려는 것”이다.
-슬기 '28 Reasons' Mood Sampler 자막 해석
‘28 Reasos’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두 자아를 가사로 표현한 곡이다. 곡에 대한 콘셉트에 맞게 무드샘플러부터 티저 이미지까지 대비되는 이미지와 캐릭터를 표현했다. 마치 선한 공주 같기도 하고, 악한 마녀 같은 두 캐릭터는 처음부터 하나의 사람이었던 느낌을 준다. 이런 서사를 반영한 듯, 티저 이미지의 이름부터 ‘sNOWWHITE’와 ‘gRIMHILDE’이다.
이는 우리가 어렸을 적에 한 번쯤은 접해봤던 동화 속 인물들의 이름이다. 아름답고 착한 백설공주와 그를 없애려 하는 왕비. 전형적인 선과 악의 인물을 제시함으로써 대비되는 그 둘의 구도를 더욱 강조했다. 거울 속에 사는 공주와 거울을 깨뜨리려는 마녀의 피할 수 없는 파이트를 표현했다.
"낯선 끌림 무기력한 너를 봐 Feel so bad 천국을 보여 줄게"
"I'm not the devil 마음껏 더 원망해 I don't care 망가질수록 나를 원해"
"사랑이란 그래 Sweet and bitter 널 망치고 구원해"
"나는 네 어둠과 빛인 걸"
-28 Reasons 가사 일부
가사에 집중해 보자. 상대에게 순수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망치려는 모순된 감정이 드러난다. 선과 악을 지닌 인물을 통해 지독한 양가감정을 읊조리고 있다. ‘28 Raesons’는 아이린 & 슬기의 첫 신호탄이 된 ‘Monster’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유닛의 시작부터 슬기의 솔로까지 아이린 & 슬기의 세계관은 쭉 이어져 있었다.
영화 ‘파이트클럽’도 이와 유사하다. 세계에 순응하면서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나레이터’는 어떻게 보면 순수한 아이 같다. 반면 세계의 질서라는 궤도 밖에 사는 ‘타일러’는 악동 그 자체이다.
이 둘의 관계는 ‘Monster’와 ‘28 Reasons’의 가사 속 세계와 맞닿아 있다. 게다가 ‘파이트클럽’에서 나레이터의 손등에 화상을 입혀 고통과 함께 살아 있음을 알게 해주는 타일러의 모습은 상대를 망치고 구원하기를 반복하는 슬기와 기묘하게 겹쳐 보인다.
고요한 세상 속에 만개한 아이린과 그런 세계를 시끄럽게 만드는 슬기의 이야기를 거쳐, 두 인물이 ‘TILT’에서 ‘BALANCE’를 이루는 파이트클럽은 이미 시작됐다. 다음 글에서 자세하게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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