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bby Jul 07. 2022

딸은 예쁜 도둑

엄마 손맛으로 채우는 자취방 냉장고

‘딸은 예쁜 도둑’이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도 정의가 되어 있는데, 사전적 의미로는 ‘딸은 키울 때나 출가한 후에도 아들보다 더 돈이 들고 친정집 세간도 축내지만 딸에 대한 애정이 커서 그것이 도리어 예쁘게만 보인다는 말.’이라고 한다.


집을 떠난 지 벌써 11년 차. 고등학교 기숙사를 거쳐 자취생으로는 8년 차이다. 초반에는 서울로 상경해 새로 만난 친구들과의 약속도 많았고, 집에서는 대부분 잠만 자는 생활을 했다. 먹는 것도 컵밥 같이 가장 싼 탄수화물. 조그만 원룸이라 부엌은 더욱 작아 본가에서 처럼 다채로운 요리를 하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요리를 꽤나 뚝딱뚝딱 잘하는 편이었는데 말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내려가면 엄마는 김치, 소분한 고기, 채소, 반찬 등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바삐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냉장고가 작아서 어차피 안 들어간다며 필요 없다고 엄마를 만류했다. 엄마는 계속 가져가라고 하고, 나는 거절하니 티격태격 언성이 높아지기 일쑤. 결국은 내가 이겨 다 빼고 자취방으로 돌아와 캐리어를 열면 한쪽에 엄마가 숨겨 놓은,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반찬들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티격태격은 없어졌다. 오히려 지금은 미리 전화해서 당당하게 요구를 한다.

“엄마, 감자랑 양파랑 대파 다 손질해서 싸줘!”

도둑도 이런 고약한 도둑이 없다.


자취생활이 길어지고, 한 동네에서만 지내다 보니 자주 가는 식당도 거기서 거기. 먹는 것도 거기서 거기가 되었다. 집밥은 매일 비슷하게 먹어도 질리지 않는데, 나가서 먹는 음식은 특유의 강한 맛 때문에 금방 질린다. 꽤나 맛집이 많은 동네에 거주하는데도 8년째 살다 보니 이제 나가서 먹기가 꺼려진다. 그럼 별 수 있나. 직접 해 먹어야지. 원래도 가끔씩은 요리를 했던 편이라 기본양념 등 구색은 갖추어 놓고 살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물가가 비싸도 너무 비싸다. 얼마 전에는 마트에 갔더니 애호박이 하나에 3800원이었다.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마트는 그 반값 정도긴 했지만, 요즘 물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지방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더 크게 느껴진다. 싸게 구매하려면 시장에 가거나 대용량으로 구매해야 하는데, 우리 집은 자취생용 작은 냉장고라 효율도 떨어져 가정용 큰 냉장고들처럼 오래 신선하게 보관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싸게 소분된 재료들을 구매한다.


최근에 엄마와 카레를 해먹은 이야기를 했는데, 주먹만 한 깐 감자 하나를 1000원에 샀다고 하니 엄마가 엄청 놀랐다. 사실 1500원이었는데 엄마가 놀랄까 봐 줄여말 한 건데도 말이다. 엄마는 요즘 우리 집에서 가까운 할아버지 댁 근처에서 우리 가족이 먹는 용도로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이번에 감자를 많이 수확했다면서 감자 하나에 1000원이면 엄마 엄청 부자라고 좋아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채소들도 너무 비싸고 과일도 잘 안 사 먹게 된다고 하니까 이번에 집에 올 때 많이 가져가라고 했다.


엄마가 잔뜩 싸주는 건 좋은데, 보관이 걱정이었다. 금방 상하는 자취방 냉장고. 엄마에게 말했더니 진공포장기를 하나 사줬다. 이번에 진공포장기를 가지고 내려가기로 했다. 가서 엄마랑 감자, 양파도 다 까고 손질해서 진공포장을 해오려고 말이다. 아예 조그마한 아이스박스에 아이스팩까지 챙겨가기로 했다. 소중한 금채소님들을 신선하게 모시기 위해서! 대신 서비스로 진공포장용 롤팩도 많이 챙겨가서 집 냉장고 정리를 내가 해주기로 했다. 엄마도 엄마만의 룰이 있겠지만, 내 눈엔 정리 상태가 영 좋지 않다.


참기름, 고춧가루. 지금까진 비싼 줄도 몰랐는데 밖에서 사려면 엄청 비싼걸 이번에야 알았다. 얘네들도 엄마한테 이번에 챙겨달라고 했다. 이렇게나 당당하고 고약한 도둑인데도 엄마는 내가 처음으로 이러니 좋은가보다. 더 필요한 건 없는지, 반찬은 뭐를 해놓을지 계속 묻는다. 나는 거절도 안 하고 좋다고 이것저것 더 싸 달라고 한다. 앞으로도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안 그러진 않을 것 같다.


“대신 내가 돈 벌면 용돈 많이 줄게!”

“됐으니까 잘 챙겨 먹기나 해~”


엄마 눈엔 내가 도둑이어도 예쁜가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