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조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사측과의 협상보다 어려운 조합원과의 소통

by 백말띠

노조 업무에서 가장 힘든 일
사측과의 협상? 아니다. 조합원과의 소통이 가장 어렵다.

노조가 설립된 지 4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노조 자금이 투명하게 쓰이는지 의심하는 조합원들이 있다. 내성이 생길 법도 한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힘이 빠진다.

조합원들을 한 명씩 면담하다 보면 한 가지 분명해지는 점이 있다. 조합원들은 성별, 연령대, 직급, 연봉 등에 따라 대의적인 안건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조합비를 내는 입장에서 이해는 간다. 하지만 조합원 간 의견이 상충할 때 안건을 조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조합원들의 서로 다른 요구
Senior 조합원들은 요구사항이 많다. 자녀 대학 등록금 지원, 업계 평균 이상의 급여 인상, 심지어 진급을 위해 과거 징계 이력을 삭제해 달라는 요청까지 한다. 이런 터무니없는 요구들은 오히려 협상단을 더욱 곤란하게 만든다.

우리 노조의 협상단은 위원장, 사무국장, 그리고 부위원장인 나까지 3인 체제로 운영된다. 무리한 요구를 받을 때마다 우리끼리 농담처럼 말한다.
"우리가 심부름센터인가?"

그렇다고 조합원들을 탓할 수도 없다. 직원 월급의 1~2%를 조합비로 내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협상단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때가 많다.

한편, Junior 조합원들은 대체로 특별한 요구가 없다. 오히려 "고생해줘서 고맙다" 라는 말을 들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것이 꼭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다. Junior 조합원들도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의 다수가 어린 직원들이다. 문제는 이들의 고통이 곪아터진 뒤에야 노조가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문제로 조합원이 퇴사한다면, 결국 노조의 목소리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더 어려운 문제, 조합원 간의 갈등
Senior와 Junior 조합원과의 소통에는 점점 익숙해지고 있지만, 더 큰 어려움은 조합원들 간의 갈등이다.

한 사례가 있다. A 조합원은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며 큰 인센티브를 받았다. 그런데 A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B 조합원이 A의 성과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프로젝트 아이디어는 원래 내가 냈던 것" 이라며 루머를 퍼뜨렸다. 처음엔 A도 무시하려 했지만, 소문이 커지자 억울함을 호소했다. 결국 회사 감사팀이 조사를 진행했지만, A의 성과는 정당하다는 결론만 났을 뿐, B에 대한 조치는 없었다. 명확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과정에서 노조가 할 수 있었던 일은 A와 B의 의견을 회사에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작은 노조에서는 이런 갈등으로 조합원이 탈퇴하면 타격이 크다. 조합원 간의 마찰에 개입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노조, 조합원, 그리고 나
혹자는 물을 수 있다.
"이렇게 귀찮은 일을 무보수로 왜 하는가?"

나도 짜증이 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하찮게 보일 수도 있지만, 내 대답은 "보람" 이다.

앞서 말했듯, 나의 첫 노조 업무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었다. 만약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면, 나는 바로 포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 외로 원만히 해결되었고, 나의 작은 헌신으로 누군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사실 학창 시절 나는 내 의견을 잘 피력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학급 임원도 여러 번 맡았지만, 선생님의 말을 잘 듣고 따르는 것이 "옳은" 정의라고 여겼다. 그런데 회사라는 사회에 들어와 보니 말을 너무 잘 듣는 직원은 "좋은 직원" 이 아니라 "쉬운 직원" 이더라. 더 나아가, 쉬운 직원이 조직에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면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너 안 그러는 애가 왜 갑자기 그러냐? 무슨 일 있냐?"

이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조직에서 의견을 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그렇다면 사장이 직원들에게 지시할 때 직원들이 이렇게 묻는다면 어떨까?
"사장님, 평소에 안 그러시던데 왜 갑자기 그러시나요?"

아마도, 그 질문을 던질 직원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식으로 상대를 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최소한 조직 내에서 서로 눈치를 볼 줄 아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그것이 내가 노조를 이끄는 이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강경한 리더십과 현실적 고민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