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간 딸이 저녁 먹자고 재촉한다. 엄마 일정도 무시한 채 저녁 약속을 잡으려는 딸이 한편으론 야속하기도 했지만, 젊은 아이들이 더 바쁠 거라 생각하며 저녁을 함께 했다. 모처럼 만난 우리는 요리만큼이나 맛있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힘들게 잡은 약속 날짜의 기쁨을 누렸다.
저녁 식사 후 사위는 오다가 복권을 샀다며 점잖게아들과 나에게 복권한장씩을 준다. 아들은 신이 나서 복권에 당첨되면 몇 분의 일로 나눌 것인지 벌써 마음이 들떠있다. 100원짜리 동전을 나누며 서서히 긁는 순간, '축 당첨'이 눈에 띈다. 아들과 나는 조금 흥분되어 복권값은 벌었나 보다, 얼마나 돈을 벌었을까 당첨된 순간을 기대를 가지고 긁어본다. 그런데 숫자는 보이지 않고 웬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당혹스러움과 함께 아들을 보니 '삼촌이 되셨습니다,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아~ 우리 딸이 엄마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과 임신소식을 알리는 신박한 젊은 아이들에게 감탄한다. 복잡 미묘한 만감이 교차하는 감정이 순간 흐르며 갑자기 딸이 태어나던 순간이 생생히 떠오른다.
병원에서 이틀간을 진통하며 지내는 동안, 늦게 들어온 산모들이 하나씩 출산의 기쁨을 맛보는 순간에도 제일 늦게까지 남아 진통을 겪던 순간이 떠오른다. 친정 엄마는 진통을 겪고 있을 딸 생각에 안절부절못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그 옆에서 지친 남편은 잠들어 있는 새벽 3시 5분에 드디어 딸아이가 태어났다. 머리가 자랄 대로 자라 더부룩한 검은 머리를 하고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며 제일 먼저 했던 말 "정상인가요?" "네, 정상예요"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추위가 찾아온다. 진통을 겪는 동안 산모 중에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던지라 노산으로 태어난 내 아이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중에 한 간호사가 "제가 데리고 나갈게요."라고 하며 남편에게 아이를 보여주러 자리를 옮기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나중에 간호사가 내 곁에 다가와 "선생님이 너무 힘드셔하셔서 제자라는 걸 이야기 못했어요. 선생님 축하드려요"라며 따뜻한 인사를 한다. 다음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굴에 온통 기미가 끼어있었던 것이다. 내 얼굴에 이렇게 기미가 많은지 처음 알았다. 진통을 겪으며 온 얼굴에 진통의 고통이 기미로 나타난 것이다.
정말 소중한 첫 큰딸을 애지중지하게 키우며 기쁨을 주었던 딸, 오히려 자랑스러운 엄마로 만들어주는 딸을 바라보며 기쁨을 함께했던 딸이, 어느덧 멋진 사위를 만나서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벅차오른다.
로또가 맞다. 어떤 돈에도 비할 수 없는 로또에 당첨된 것이다. 한 번도 로또에 당첨된 적이 없는 복권을 보며 가장 큰 로또 맞은 날을 태어날 초음파 속 손주와 함께 축배를 들어본다. 태어날 사랑스러운 손주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튼튼하고 예쁘게 잘 자라 10월에 할머니랑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