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상 중 보라색이 제일 뒤에 있는 이유는 뭘까? 과학적으로 보면 빛의 분산 때문에 파장이 길어 잘 보이지 않아 제일 뒤에 있는 거라는데 그래서일까? 보라색을 보면 신비의 세계가 펼쳐진다. 예전엔 보라색 염료를 만들기가 어려워 귀족들만 보라옷을 해 입었다는 의미로 보라색은 귀족스럽고 고귀하게 대접을 받았다.
이유가 어쨌든 나는 보라색이 좋다. 라일락빛 보라도 예쁘고무수카리도 너무 예쁘다.
11월에 호주에 갔는데 4월의 벚꽃처럼 가로수에 활짝 핀 보라꽃자카린다 나무도 잊을 수 없다. 파란 하늘 아래 보랏빛 꽃잎이 바람에 날리며 바닥에 쌓여있는 모습은 마치 다른 동화의 세계를 온 듯하다.
나는 보랏빛을 찾아 퍼플섬으로 향한다. 보라색 옷을 입으면 입장료가 면제라는 바람에 온몸을 보랏빛으로 장착한 채 보라섬으로 향한다.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노란빛의 넓게 펼쳐진 유채꽃밭이었지만 조금 지나니 도로부터 보라색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선다. 보라색으로 칠해진 지붕도 정겹고 1004의 섬을 형상화한 의자도 구름 낀 바닷가 앞에서 빛나고 있었다.
푸른 자연 속에 빛나는 보랏빛은 4월의 이른 계절 탓에 보라꽃이 피어있지는 않았지만 삭막한 갯벌 위에 보라색이 눈부시게 다가온다. 귀여운 보라 붕붕이를 타고 섬 한 바퀴를 돌자 오래된 섬의 정겨운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린 왕자는 보라색 옷을 입은 채 앉아있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위한 공중전화박스는 달려가 좋은 사람과 통화의 충동을 느끼게 한다.
붕붕이를 타고 섬 한 바퀴 돌면서 사람의 관심도 끌 수 없는 먼 남쪽의 조그만 섬이 보라색으로 화장을 하고 섬이 살아나는 걸 지켜보니 흐뭇해진다. 마을 사람들도 남녀노소 모두 보라옷을 입고 보라 그릇으로 식탁을 차린다니 생활 속의 보라가 된 것 같다. 반월섬과 박지도를 연결해 주는 퍼플교로 인해 섬사람들도 쉽게 육지를 오갈걸 생각하니 마음이 풍성해진다.
한때는 라벤더 보라색에 반해 옥상에 있는 모든 화분과 테이블을 보라색으로 칠해 나만의 정원을 가꾼 적이 있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보라색 위에 소복이 쌓여있는 하얀 눈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경탄한 적도 있었다. 겨울이라 꽃은 없었지만 보라색 화분이 하얀 눈 속에 꽃처럼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아마 이 퍼플섬도 눈 내리는 날 더 멋지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오늘은 나 자신을 온통 보라색으로 감싸고 그 향기에 흠뻑 취한 날,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모래사장 위에 보랏빛 우산을 남기며 기억 속에 꾹 저장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