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백수로 살면서 해방감을 느끼는 것은 뭘까? 그건 아마 내가 정해논 시간의 틀에 얽매여 또다시 구속하는 삶이 아니었을까? 정해진 약속의 틀을 벗어나면 희한하게 머리도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모든 약속도 없이 오로지 나하고 만나는 시간이 좋다.
작년 12월 사라지는 항공 마일리지가 안타까워 제주도 비행기를 예약했다. 지금까지는 마일리지를 신경 안 써서 날아가버렸는데, 마일리지가 많아 이것저것 사다가 남아서 제주를 비즈니스석으로 티켓을 끊어놓았다.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비즈니스석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하지만 공짜니 너무 즐겁지 아니한가?
예전에 팔라완 대한항공 개항 기념이벤트에 당첨되어 비즈니스 석으로 간 적이 있다. 나를 제외한 가족은 이코노미석이고 나는 비즈니스석 의자에 누어서 긴 시간을 편안하게 간 적이 있다. 그때의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공짜는 항상 즐겁다.
김포에 느긋하게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니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올걸.. 김포 라운지라 그런지 다과와 음료만 준비되어 있다. 아, 이것도 공짜이니 얼마나 좋은가? 잘 먹지 않던 과자와 카스텔라를 집어 들고 주스도 종류별로 따라 조용한 분위기의 라운지를 즐긴다.
좀 더 일찍 오지 못한 걸 아쉬워하며 탑승에 줄을 선다.
90살 넘은 엄마와 여행할 때가 생각난다. 연세가 드셔서인지 먼저 탑승우선권을 얻을 수 있어서 엄마가 좋아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심지어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 남모르는 사람이 외국인 대기 긴 줄 말고 다른 쪽으로 가라고 하는 바람에 처음에 깜짝 놀란적이 있었다. 그들은 노인 경로가 깍듯해서 연로하신 분 피곤할까 봐 vip통로를 안내한 것이었다. 노인과 스승에게 존경의 표시로 손등키스를 하는 그들의 모습도 참 인상적이었다.
그때를 제외하곤 항상 뒤에서 기다려야 했는데 먼저 탑승하니 잠시 기분이 좋아진다. 기내 의자 공간은 널찍하고 사람이 별로 타지 않아 공기마저 쾌적한 듯하다.
기분 좋게 내린 후 트렁크를 찾으러 가니 내 낡은 트렁크가 Priority를 달고 제일 먼저 나온다. 내 트렁크가 대우받는 것은 처음 이어서 나처럼 놀랐을 것 같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돈. 돈을 외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똑같이 가는데 도착만 하면 되지 하는 서민의 마음을 간직하고 사는 마음은 변함없지만. 어쨌든 공짜의 기분을 만끽한 채 잠시 모든 걸 잊고 오로시 제주바다와 바람을 흠뻑 마실 생각하니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계획? 무계획이 나의 제주시간을 즐기는 방법이다. 차바퀴 굴러가는 대로 멈추고 쉬면서 나의 시간을 제주에 풀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