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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현 김미숙 Apr 18. 2024

제주 정원-숨이 모여 쉼이 되는 정원 <숨도>

에세이

아침 창가를 보니 멀리 범섬이 짙은 안개에 싸여 흐릿하게 보인다. 제주도는 요즘 맑은 날씨 보는 게 어렵나? 지난번 짙은 스모그에 덮인 성산일출봉도 떠오른다. 배낭 둘러메고 오늘 쉴 곳을 찾아가보지 못한 멋진 카페에서 차 한잔부터 시작하려고 차를 몰고 가는 중, <숨도>라는 팻말을 보고 호기심에 멈춘다. 서귀포를 여러 번 차량으로 다녔지만 이름이 생소했다.  알고 보니 석부작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있었나 보다. 서귀포시에 위치한 숨도는 남편이 아내를 위해 10년 동안 가꾸어진 정원이라고 한다. 지금은 아들이 관리하고 있지만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의 세심한 마음이 곳곳에 느껴진다. 제주도에선 <생각하는 정원>을 보고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훌륭한 정원이 있구나 생각했는데 <숨도>는 아담하면서 제주스러움을 곳곳에 담고 있어 주인이 추구하는" 소란한 일상에서 느낄 수 없었던 온전한 '나'와 오롯이 마주한 자연이 주는 사색의 걸음걸이로 치유와 마음의 여유를 채워가시길 바란다"는 모토처럼 내가 걷고 싶은 산책길이었다.

외국의 정원을 여행하다 보면 입장료가 비싼 대신에 광활한 정원이 펼쳐지는 걸 보며 부러워했었다. 특히 코로나 직전에 여행했던 모로코의 마조렐 정원은 잊을 수가 없다. 입센로랑이 영감을 얻고 사랑한 모로코에 그의 유해가 잠자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이 전시된 박물관은 로랑의 생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 정원이 인상 깊었던 것은 원색의 색과 자연이 합쳐져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어서였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무채색의 자연 그대로를 펼치는 것도 좋지만 인간이 누리는 색채의 아름다움과 배합한 자연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파란 하늘과 구름 낀 하늘 사이의 자연이 달리 보이듯 눈을 즐겁게 하는 채색된 정원도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채색된 정원을 아직 잘 보지는 못했지만 이 <숨도>는 아름다운 꽃길을 걸으며 꽃이 전하는 말들을 들을 수 있고, 현무암으로 척박한 땅에서도 돌의 '트멍, 을 통해 사이사이 생명을 키워 나가는 식물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The breathing Island>라는 이름에 알맞게 화산석위에서 세찬 바람이 불더라도 거친 돌 위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꽃들의 정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맨 처음 마주하는 주렁주렁 매달린 하귤의 향연은 제주에 왔다는 실감을 맨 먼저 느끼게 해 준다. 하귤다리를 통과하며 무게가 꽤 나갈 것 같은 큰 하귤을 감당하고 있는 귤나무에 감탄한다.

좁은 산책로 사이로 야생화와 더불어 지금 한창인 철쭉과 이름 모를 꽃들의 길을 천천히 지나가다 보면 텅 비어 있는 머리에 아름다운 향기를 듬뿍 채워주는 듯하다. 이곳은 사시사철 꽃을 볼 수 있게 해 놓은 것 같다. 동백숲이 다 지고 난 뒤 철쭉의 세게로 들어갈 수 있고 철쭉이 끝난 다음엔 수국의 계절로 장식되고 가을엔 갈대로 장식되리라.

 야외폭포의 시원한 물소리를 지나 음의 정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숨도 카페에 들어선다. 한라산이 바라다 보이는 야외 정원을 가지고 있는 이 카페는 사방이 사계절 풍광의 창문을 가지고 있었다. 눈이 푸르름에 닿으니 눈이 맑아지는 듯하다. 잠시 청귤차를 음미하며 깊은숨을 고른다. 평일이어서인지 사람들도 많지 않아 주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정원에서 많은 시간을 천천히 음미하며 보냈다.

 여행은 이맛이지. 서두르지 않고 계획한 카페에 가지 않으면 어떠랴. 우연히 발견한 이 <숨도>에서 나는 오늘 하루 쉼을 느낀다. (2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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