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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삼 Nov 30. 2019

모든 여행러가 행복하진 않다. 01

퇴사 후 떠난 두 번째 유럽여행, 3개월의 기록


2017년 6월 18일 출국,
인천에서 바르샤바를 거쳐 런던으로


  2017.06.18~2017.09.15 /  88박 90일, 1일 차





  드디어 출국이다. 탑승수속이 너무 길었다. 한국은 작은 땅덩이인데도 해외로 나가고자 하는 인구가 이렇게나 많다. 환전액을 모바일로 신청해 두고, 부랴부랴 찾아 가느라 여유로운 시간이 전혀 없었다. 급하게 비행기를 탔던 것 같다. 게다가 유심도 미리 빼버린 탓에 심심하기 그지없고. 듣기로는 LOT 항공에 한국말을 하는 폴란드 직원이 있다고 했는데,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 정말로 한국말을 하는 직원분이 있었는데,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람. 발음까지 좋으셔서 죄송하지만 너무 신기하게 봤다. 그리고 여전히 드는 생각은, 아. 나 괜히 유럽 가는 거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퇴사 후 제주도에서 보낸 3개월이 너무 행복했기 때문일 것이다. 3월 15일을 막 근으로 나는 친구들과 부산을 가고, 지인을 보러 강릉을 홀로 떠나고, 매일을 친구를 만나 만화 카페에 가서 만화책 보며 시시덕 거리다가 제주로 내려갔다. 서울에서의 모든 삶을 정리하고 내려간 제주에서의 삶도 행복 그 자체였다. 집에서 10분만 걸어가면 보이는 바닷가 산책로. 나는 일을 하지 않는 백수이기 때문에 늘 행복했다. 게다가 이땐 급하게 아이돌 가수에게 빠져서 덕질하며 지내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덕심은 활활 불타올라서 돈도 많겠다(유럽 가서 써야 할 돈인데), 그 돈으로 그들의 서울 콘서트 3일을 다 가는 미친 짓까지 하게 된다. 그때 쓴 돈만 200은 됐던 거 같은데, 그래서 내가 이후에 그렇게 거지 같은 생활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 하하.


  SKT는 뻥쟁이들이었다. 분명히 공항에서 대기할 때 전화하니까 정지된다고 해놓고, 정지가 안 된다. 이때 나는 정말 귀찮게도 핸드폰 통신 요금 좀 아껴보겠다며 포켓파이 10기가짜리를 들고 다녔었는데, 일단 입출국 한국에 있을 때 데이터를 써야 해서 포켓파이도 챙겨 갔었다. 정말 비효율 끝판왕. 정말 개 뻥쟁이들. 이 문제는 결국 런던에 도착하면 숙소에서 노트북으로 해결 보기로 했다. 여기서 보이는 어이없는 점 또 하나. 그렇다. 나는 이 3개월 나름 장기 여행에 노트북까지 챙겨 갔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미친놈이야.


  통신사 욕을 실컷 하던 차에, 맙소사.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뜬다. 떠... 나 정말 한국 뜨는 거야...? 정말... 가기... 싫은데... 그러나 이 비행기는 탑승 시간 11시 5분에서 10시 45분으로 땡겨 놓곤(이때 정말 혼란 그 자체), 이륙은 11시 20분에 하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짝짝짝.







  갑자기 이어폰을 주길래 일단 챙겼다. 3개월 장기 여행이라 뭐든 쟁여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근데 이어폰보단 일단 배가 고프니까요, 빨리 밥부터 주세요...







  기내식을 기다리며 영화는 뭘 볼까, 하고 룰루랄라 검색을 했다. 세상에, 밀정이 있다. 기내식 먹으며 밀정을 보기로 했다. 그러나 밀정 속 일본어 대사는 영어 자막으로 봐야만 했다. 어째 영어 자막보다 일본어가 더 대사를 알아듣는 기분이었다.







  처음 음료만 받을 때 나는 1인 1 음료인 줄로만 알고 오렌지주스만 받았다가, 옆에 아저씨가 오렌지 주스랑 와인 두 개 시키는 거 보고 얼른 물 한 잔 더 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늘어가는 눈칫밥. 그러다 기대하던 기내식이 나왔다. 비행 한 시간 만에... 기내식 타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기내식이 끝내주게 맛있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이상하게 기내식이 그렇게 좋더라. 숙소 가면 조식 좋아하고...







  불고기 시금치를 받았다.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한데, 아마 치킨을 시켰는데 다 떨어져서 이걸로 받은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고를 메뉴가 아니야. 그리고 저 빵 따로, 샐러드 따로는 빵을 갈라서 넣어 먹는 거 같던데 멍청하게 빵 따로, 야채 따로 먹었다. 어쩐지, 맛이 이상해. 그래서 그냥 빵은 버터 발라 먹었는데, 오랜만에 먹으니까 온 몸이 짜릿할 정도로 맛있었다. 그러나 저 사진 속 푸딩인지 뭔지 모를 네모난 것은 맛대가리가 전혀 없었다.


  식사 중에 보는 밀정은 다시 봐도 너무 재밌었다. 영화 보는 내내 중간중간, 내 시선을 빼앗은 분이 계셨다. 대각선 앞에 앉은 여성분이었는데 비행시간 내내 책이랑 지도를 펼쳐 열심히 여행지 공부를 하셨는데, 그 모습이 정말 멋있게 느껴졌다. 나는 정말... 아무 계획이 없는데...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정말 우주 잠 꽂았다. 중간에 깨지도 않고 이어 자다가 허리가 아파서 깼는데, 사실 배가 고파서 깬 것도 있었다. 뱃속에 거지가 들었는지 기내식 먹고 앉아 있기만 했는데 배가 금방 꺼진다. 약간 허술한 기내식의 문제일까?


  그나저나 공항에서 5시간 대기인 게 당장 닥친 큰 일이었다. 그동안 나는 무얼 해야 할까. 혼자다 보니 짐은 바리바린데(캐리어는 수하물로 부쳤으나, 노트북이 들어 있는 무거운 백팩과 짐 한 가득 넣어둔 에코백, 앞으로 맨 보조 가방이 있었음.), 혼자 바르샤바 공항 투어라도 해야 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차에 두 번째 기내식이 나왔다. 기내식은 참 신기한 게 맛없는데 너무 좋다. 이번에 받은 기내식은 제대로 빵 반 갈라서 야채 야무지게 넣어 먹는 데 성공했다. 사과주스는 생각보다 별로였고, 디저트는 역시나. 아까부터 계속 별로다(맛없다).


  저번 첫 유럽 여행 땐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새로 산 모자 두 개를 두고 내렸던 쓰린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엔 꼭 모자를 잊지 않고 챙기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 모자는 두고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험난했다. 환승하는데 내가 가야 할 게이트 입국 심사대를 못 찾아서 두 번이나 입국 심사를 거쳤다. 정말 멍청한 놈이야, 나는... 게다가 중간에 공항 와이파이가 안 돼서 너무 놀랐다. 왜 안 돼서 사람을 심란하게 만들어요! 나쁜 공항! 그래도 겨우 와이파이 연결에 성공하니 음악도 듣고, SNS도 하고 나름 세상과 소통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비행기에 갇힌 지 꼬박 12시간 만에 맛보는 문명. 그러나 주변은 온통 서양인뿐이라, 동양인은 나 혼자인 게 조금 외로웠다.


  커피가 마시고 싶어 졌다. 분명히 오는 길에 코스터를 본 기억이 있다. 지난 유럽 여행에서 나를 홀딱 반하게 한 인생의 동반자, 코스터. 스벅보다 더 좋아하는 브랜드였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착각이었나? 그나저나 아까부터 저 잘생긴 서양남이 눈에 들어온다. 잘생겨서 그런지 자꾸 눈에 띄네. 그만 좀 띄어주실래요.






  입도 심심하고 시간도 때울 겸 주전부리를 사 왔다. 라임 콜라가 있길래 라임 콜라와 함께 카누 타 먹으려고 생수 한 병도 샀는데, 아뿔싸. 유럽인 걸 잊었다. 물을 샀는데 탄산수였다. 아하하하! 카누 에이드! 우엑... 결국 커피는 포기하고 샌드위치와 콜라를 먹기로 했다. 그러나 샌드위치... 좀... 심각하게... 맛이 없는데... 그림만 봐서 는 닭다리 같아서... 치킨 샐러드인 줄 알았더니... 어쩌면 우리나라 소속 편의점들 샌드위치가 퀄리티가 좋은 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말 미안하지만, 샌드위치야. 너는 나와 끝까지 함께 할 수가 없겠구나. 결국 샌드위치는 쓰레기통에서 제 운명을 맞이 했다.


  5시간 대기는 혼자 보내게 되면 굉장히 긴 시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눈꺼풀이 자꾸만 무거워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주변엔 아무도 없고, 나는 계속 졸리기만 하고. 생각해 보면 내가 밤을 새우고 출국을 하게 된 건데(11시 비행기라 인천 공항엔 못해도 8시엔 도착을 해야 하는데, 서울 집에서 인천까지 2시간이 걸려서 결국 나는 밤샘을 하고 첫차 리무진을 타고 왔다.), 토요일 13시부터 깨어 있던 거니까 20시간을 버티고 있는 중이었던 거다. 물론 비행기에서 10시간 정도 갇혀 있다가 잠도 자긴 했지만, 비행기에서의 쪽잠이 피곤이 풀릴 정도는 아니니까. 결국 혼자 18일을 38시간째 보내는 중이었다. 정말 집에 가고 싶어 졌다. 한국이든, 런던 숙소든.


  혼자 여행을 하게 되면 편한 점은 나 혼자라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거고, 안 좋은 점은 혼자라서 어딜 가도 이동시엔 모든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녀야 하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 이런 상황은 사람을 매주 뭣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특히 짐이 많으면 많을수록. 화장실을 가고 싶었는데 한 번 갈 때마다 거의 민족 대이동 수준이어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 7시 10분부터 가고 싶었던 화장실이었건만 보딩을 8시부터 처하고 있다. 이런 망할 놈들아. 결국 화장실을 가지 못한 채로 비행기에 올라탔고, 비행기 화장실을 썼다.


  그렇게 힘들게 바르샤바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런던은, 또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저번 여행 때 출입국 심사에서도 별 질문이 없었는데, 이번엔 3개월이나 여행을 하고 런던은 무려 21일(3주)을 체류하니까 뭔가 엄청난 걸 묻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러나 이런 내 걱정과는 다르게 현실은 너무 허무하게 지나갔다.


얼마나 있니?

-3주

왜 왔어?

-그냥 여행...

여기에 친구 있는 거야?

-아니, 그냥 나 혼자 여행하는 건데...

오, 그렇구나! 알았어, 즐거운 여행 해~


  정말 누가 봐도 돈 없는 거지 여행자 같은 느낌이었나. 불체자 느낌 없던가요...? 잔뜩 긴장했는데(환전한 돈이랑 파리로 넘어가는 버스 티켓 다 꺼내서 준비하고 있었음), 허무하게 끝났다. 어쨌든 나는 결국 가기 싫었던 유럽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쓰리심을 자판기에서 사서 출발하고 싶었는데, 또 뭐가 뭔지 몰라 고민하다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깊은 고민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너무 졸렸다. 그저 씻고 누워서 자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2017년 6월 18일. 4,004걸음







2019년 11월 30일에 써보는 첫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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