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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삼 Jan 13. 2016

2014, 홍콩 #04

마지막 날, 옹핑 마을 그리고 한국




D+4, 2014.10.06




#드디어 홍콩의 마지막 날




그저께까지만 해도 한국에 돌아가려면 아직 이틀이나 남았어! 라고 생각했는데, 3박 4일은 생각보다 짧은 여행 일정이었다. 지금껏 여행이라고는 중고등학생 때나 가던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등의 2박 3일이 전부여서 3박이면 꽤 여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와 보니 생각보다 많이 짧은 일정임을 마지막 날, 아침을 맞이하며 알게 되었다.



마지막 날의 일정은 크리스탈 케이블카를 타고 옹핑 마을에 가서 불상 구경 및 허니문 디저트에 가서 망고 팬케이크와 망고주스를 먹고 공항으로 돌아가서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타는 것. 외국에 와서 장소 이동을 하는 것은 사람을 참 긴장하게 만드는 일이었는데 우린 생각보다 여기저기 잘 다녔던 것 같다. 물론 마카오는 망했었지만.



이번 홍콩 여행을 와서 느낀 점이 참 많았는데 가장 크게 감명(?) 받았던 건 한국의 블로거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귀찮음을 다 이겨내고 친절하게 사진을 하나하나 다 찍고, 세세한 설명까지  포스팅한다. 우린 그 덕에 덜 헤맬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고마웠어요. 그대들 덕에 홍콩에서 길 안 잃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전날 미리 짐을 싸 둔 덕에 아침엔 딱히 물건을 챙길 일이 없었다. 심지어 밖에 입고 돌아다닐 옷을 그대로 입고 외투만 걸쳤기 때문에 벗고 넣을 옷도 없었다. 역시 난 머리가 좋아. 빨래야 뭐 어차피 집에 가면 세탁기가 다 빨아줄 텐데 뭐.








마지막으로 욕실 타일 때문에 화장실에서 자는 기분이었지만 투룸 같은 느낌을 주던 우리의 원룸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작별의 인사는 역시 거울 앞 셀카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날 셀카는 참으로 잘생기게 나온 기분이다.



망가진 캐리어를 질질 끌며 옹핑 마을로 향했다.  중간중간 정말 화딱지가 많이 났다. 날은 덥고, 햇빛은 뜨거운데 캐리어는 너무 무겁고, 나는 이걸 들고 다녀야 한다. 결국 짜증 나서 발로 차면서 다니거나 타고 다녔다. 내 생에 이렇게 힘겹고 짜증 나는 일도 더 없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망가진 손잡이를  대신하겠다고 제니 쿠키를 살 때 받은 비닐 봉투를 손잡이처럼 달아놓긴 했지만 너무 짧았다. 사실 그냥 있으나 없으나 한 존재였다.





정말 부셔 버리고 싶었던 애증의 캐리어.






분노가 느껴지는 전신샷




그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가는데, 내 동기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저 갈길만 빠르게 앞서 갈 뿐이었다. 참으로 야속했다. 물론 일정이  지체되면 큰일이니까 서둘러 가는 건 맞지만 그냥 그때 당시엔 그 모든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고, 우울했다. 나를 조금만 더 배려해줄 수는 없나, 이런 생각을 했었다. 1여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어리긴 어렸구나. 라는 생각이 더 크지만 말이다. 너무 내 중심이었다. 동기도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 온 건데, 그 옆에서 같이 온 언니는 짜증만 내고 있으니 나만큼 짜증 났겠지 싶다.



어찌 됐든 가는 길은 정말 험난했지만 팔 힘 열심히 키워가며 드디어 옹핑마을로 올라가는 케이블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미리 결제해서 왔는데, 세상에. 정말 미리 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던 게, 케이블카 탑승권을 사려고 선 줄이 정말 어마 무시하게 길었다. 모든 홍콩 사람, 중국 사람이 다 온 기분이었다. 줄이 끝이 보이질 않았는데, 우린 미리 끊어왔기 때문에 탑승권 구매 줄 보다 10분의 1은 더 짧은 예약자 줄에 서게 되었다. 그 짧은 줄로 서는 우리를 보는 눈빛들이란. 약간 승자의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마 내 기억상 그 예약 줄은 크리스탈 케이블카였던 걸로 기억한다. 왜냐면 그건 따로 예약을 해야 탈 수 있었던 것 같으니까. 몇 대 없는데, 이건  밑바닥이 투명해서  아래가 다 보이는 그런 케이블카였다. 여기 오면 이건 꼭 타 줘야 한다고 해서 동기가 예약했는데,  타고나니 캐리어 때문에 났던 짜증은 금세 잊혔고 우린 신나게 셀카 타임을 가졌다.



그때 같이 케이블카에 탔던 사람들이 한국인 모녀랑 중동 4인 가족이었던 거 같은데. 이걸 어찌 기억하느냐.  내려올 때도 이 한국인 모녀랑 같이 타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어쩜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허허.







처음엔 신나서 사진을 막 찍긴 했는데, 고도가  높아질수록 아찔함이 커져서 나중엔 먼 산만 바라보았다. 고소공포증이 있는지라  안전장치 없이 높은 곳에 올라가면 현기증을 느끼는데, 바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밑을 바라보면 어지러워서 그저 시선을 멀리 던지고 손잡이만 꼭 붙들었다.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그 투명한(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밟았기 때문에 스크래치가 엄청났지만.) 밑바닥으로 보인 아찔했던 그 높이.



자꾸만 추락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가득 안고 있기를 몇십 분이 흘렀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고, 두려웠던 케이블카에서 내릴 수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눈앞에 보인 풍경은 약간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에 갔던 수학여행지의 느낌이었다. 경주… 같기도 한 것이, 예스러운 건물들과 저 멀리 보이는 불상. 이곳에 내린 우리는 우선 멀리 보이는 불상을 두고 포토존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주변 관광객들도 우리가 서있던 포토 팟에서 찍기 위해 줄을 섰고, 만족할 만큼의 사진을 건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치가 보여서 결국 자리를 내주었다.



불상과의 포토타임을 마친 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미리 봐 두었던 디저트 맛집으로 향했다. 이름이 허니문 디저트였나. 망고주스랑 망고 팬케이크? 그냥 케이크? 아무튼 그런 게 유명한 집이랬는데, 가게에 들어서자 아, 이 곳이 정말 유명한 곳이구나. 를 느낄 수 있었다.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어떻게  빈자리 하나를 찾아 앉은 후 직원을 불렀다. 직원은 메뉴판을  가져다주었고, 우린 나름 고민하는  척했지만 실은 이미 주문할 메뉴는 이미 정해서 온 거라서 망고주스 2잔과 망고 팬케이크? 를 주문했다. 사실 지금도 이게 이름을 잘 모르겠는 게, 분명 무슨 케이크라고 했던 거 같은데 모양은 만두 모양? 찹쌀떡? 이런 거여서 팬케이크라고 말하기가 좀... 













시간이 좀 지나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확실히 망고주는 허유산보단 훨씬 맛있었다. 조금 더 진하고, 꾸덕하고. 허유산은 정말 실망 가득 이었는데. 그리고 그 망고 빵. 케이크인지 빵인지 모를 그것. 안에 푹신푹신한 망고 크림? 생크림? 그래 생크림이었던 것 같다. 그게 정말 가득 이었는데, 입에 넣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와. 진짜 맛있어! 그때 우린 너무 어리석게 하나만 시켰던 지라 둘이 한 개씩 먹고 나니 너무 아쉬웠다.

그래. 그렇다면 하나를 더 시켜 먹자! 둘이 그렇게 합의를 보고 직원을 불렀다. 익스큐즈미~! 하고 부르니 직원이 온다. 그녀에게 우리가 먹었던 메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디스, 원 모어 플리즈.”하니 돌아온 대답은 “쏘리. 솔드아웃.” 세상에. 우리가 시킨 게 마지막이었단 말인가. 어쩐지. 우리 뒤로 들어온 커플도 이걸 먹으려고 했던 거 같은데 다른 걸 시키더라니. 



결국 배를 채우기는커녕 입조차 만족하지 못한 채로 허니문 디저트를 나왔다. 동기는 저 멀리 있는 불상을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 했으나 나는 고장 난 캐리어를 끌고 그곳까지 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이 곳에서 캐리어들과 쉬고 있을 테니 몸 가벼이 다녀오라고. 어차피 홍콩 선불 유심 카드는 내 핸드폰에 끼워져 있었기 때문에 난 여기서 페이스북이나 하겠다면서.





동기가 보러 간 불상





동기를_기다리던_내_눈_앞_풍경.jpg




그래서 동기는 결국 혼자 사진을 찍으러 떠났고, 나는 밑에 남아 캐리어를 지키며 페이스북이며 인스타며 SNS  이것저것 기웃 거리며 시간을 때웠다. 불상 사진을 잔뜩 찍고 온 동기와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올 때 같이 왔던 그 한국인 모녀와 함께 내려왔다. 그리고 우린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나흘 만에 다시 돌아온 홍콩 공항.



동기가 추가 수하물 신청을 한 덕에 동기 편으로 내 캐리어도 밀어버리니 세상에. 몸이 가벼워졌다. 남은 홍콩 달러를 공항에서 모두 털기 위해  이곳저곳 기웃 거리다가 아빠에게 드릴 호랑이 파스랑 할머니 선물용으로 호랑이 연고를 사는데 이때도 직원이 영어로 뭐라 뭐라 했었다. 기내로 들고 탈 거면 지퍼백에 넣어야 한다는 내용 같았는데,  알아듣기는 해도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오케이, 오케이. 암 언더 스탠. 을 연발하며 그 직원에게 지퍼백을 얻었고,  그곳에 모든 물건을 쑤셔 넣었다.



하루 종일 먹은 것이라곤 저 정체 모를(사실은 기억이 나지 않는) 망고 빵이랑  망고주스뿐이어서 나와 동기는 하기가 졌다. 뭐라도 배속에 쑤셔 넣어야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눈 앞에 보이는 맥도널드에 무언가 이끌리듯이 빨려 들어갔다. 어딜 가도, 무엇을 먹어도 홍콩 특유의 향신료 냄새 때문에 많이 먹지를 못했는데 맥도널드만큼은 다르겠지 싶었다. 하지만 우린 햄버거도 입맛에 맞지 않아 겨우겨우 입으로 밀어 넣었다.





홍콩은 햄버거에서도 홍콩 냄새가 난다. 그 특유의 향신료 냄새.




그렇게 홍콩달러까지 다 털고 나니 탑승할 시간이 되었고, 나는 다시 4시간이 지난 후에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장 난 캐리어를 집까지 가져갈 자신이 없어서 나는 집 근처 역에 도착 후 남동생을 불러 캐리어 셔틀을 시켰고, 이 캐리어 보이는 1년 후엔 유럽 캐리어 셔틀을 하게 된다.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은 참  다사다난했고,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생한 것들이 오히려 더 추억처럼 느껴진다. 모든 여행은 그렇다. 고생은 그 당시 상황에선 정말 힘겹고 괴롭지만 지나고 보면 그 기억이 제일 진하게 남는다. 이렇게 내 첫 여행은 끝이 났다. 







2016.01.13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글을 못 올릴 줄은 몰랐다.

역시 일을 시작하니 글 쓰고, 써둔 것을 정리하고 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씩 하다 보면 언젠간 내 여행 기록을 다 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홍콩은 다  완성했다는 거...! 기쁘다, 기뻐. 드디어 여행기 하나가 끝나다니...

감격스러우니 짤 하나 남기고 이제 드디어 홍콩을 놔주어야겠다.

안녕, 홍콩. 네가 벌써 해가 넘어가서 2년 전이 되었구나.





내 돈을 다 갖다 바쳤던 디즈니랜드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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