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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로 May 04. 2022

또 다른 고민...

맑은 날이었다.

겨울의 끝자락에 맛보는 따뜻한 날이 좋아 가게 문을 열어 놓고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바람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투명한 얼음을 박아놓은 것처럼 텁텁하지만 깔끔하고 시원한 느낌이었다.

아직 겨울을 못 벗어난지바람은 살갗을 긴장시켜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로 다.

그래도 차가운 바람이 나의 좁아 든 허파를 부풀게 하고 코로나로 격리된 나의 영혼을 맑게 해 주는 것 같아서 평소보다 기분이 좋았다.

가위질로 분주한 손놀림과는 달리 머릿속 생각들은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여유롭게 멀리멀리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념들로 행복을 맛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게 앞이 어두워지면서 검은 그림자들이 이리저리 날뛰며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었다.

일상적인 현상이 아니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도 예측도 할 수 없었다.

짧고 가느다란 섬 듯한 기운이 가슴을 날카롭뚫고 지나갔다.

나의 상념들은 팝콘이 냄비에서 튀어나오듯 정신없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산산이 깨져버렸다.

달콤한 나의 시간을 방해한, 알 수 없는 것들을 응징하고 싶을 만큼 짜증이 났다.

가게 앞에 내려앉은 검은 물체들은 둔탁하고 시끄러운 소음을 냈고, 어색한 소리들로 나는 예민해지고 있었다.

뭔지 몹시 궁금했다.

들리는 소리와 나의 직감으로 그것의 정체를 밝히려고 나의 모든 세포들은 분주했고, 결국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답을 찾아냈다.


그것은.


며칠 전부터 주인님의 밥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깨끗이, 설거지한 듯, 한 알의 사료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뭔가에 놀란 듯 급히 자리를 뜬 것처럼 밥그릇과 물그릇이 어수선했다.

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주인님의 깔끔한 성격과는 아주 다른, 천방지축 아기의 흔적이 남아 듯 물은 바닥에 흥건하고 밥그릇은 물그릇에 반쯤 걸쳐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며칠째 왜 일까 궁금하고 답답한 맘에 불안한 느낌마저 들어 미칠 것 같았다.

몇 날 며칠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생각이 지쳐갈 때쯤 비둘기 한 마리가 날지도 않고 걸어서 가게 앞으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게 앞 계단에 다다랐을 때, 계단을 폴짝폴짝 뛰어오르더니 쏜살같이 주인님 밥그릇으로 달려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또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이런!

순식 간에 비둘기 무리들이 가게 앞을 점령했고, 부리보다 큰 사료를 정신없이 냉큼냉큼 집어삼켰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남아있던 사료가 깨끗이 비워졌다.

그리고는 물그릇 안에 몸을 담그고 한 놈씩 목욕까지 한다.

"잉!"

"비둘기가 료도 먹어?"

"아니, 훔쳐먹잖아."

평화상징인 비둘기가 남의 밥까지 훔쳐먹을지 몰랐기에 너무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나는 "그렇지, 비둘긴 떨어진 걸 먹나 먹다 남은 걸 먹나 다를 게 없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땐 당연한 것이 됐다.

비둘기에겐 당연하지만 나에게는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수시로 먹다 남은 사료를 먹어치우고는 휙 하고 재빨리 사라진다.

아니 훔쳐먹고 도망간다.

한 번은 참새를 쫓듯 비둘기를 쫓아보았지만 쉽게 물러서지 않고 흩어졌다 다시 모였다.

그럴 때마다 비둘기의 수는 배로 늘어나 있고 빈틈이 보이는 곳으로 다시 몰려드는데, 자기 영역을 침범한 적을 쫓아내기 위한 살벌한 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마치 히치콕의 영화 "새"를 현실에서 마주하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이렇게 여러 번의 소동이 있고부터는 주인님이 먹고 남긴 밥그릇은 가게 안으로 들여놓기도 하고 부족한 듯 사료를 줘서 다 먹고 가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비둘기에게 먹이를 안 주자니 몰인정스럽고 불쌍하고 주자니 사회적 양심에 걸려서 곤혹스럽다.



이제 나를 방해한 검은 물체의 정체를 안 순간, 나는 답답한 마스크를 벗어던진 것처럼 개운하지만 고민은 배로 늘었다.

무법자처럼 왔다가는 저 녀석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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