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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석 Jan 23. 2023

추억

그래도 내가 읽는 이유

 종이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고민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책을 정리하고 보관하는 것입니다. ‘미녀와 야수’의 야수 성에 있는 것처럼 큰 서재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한은 일정한 양이 차면 처분해야 합니다. 서재 때문에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이삿짐센터에서 질색합니다. 책이 많은 집을 아주 싫어하더군요. 큰 서재에 대한 꿈은 접은 지 오랩니다. 지금은 그냥 작은 방 하나를 서재로 쓰고 있으므로 늘 책을 처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기는 책을 선별하는 저의 기준은 ‘추억’입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뭔가 강렬함이 있다거나, 잔잔하지만 깊은 여운을 주거나 하는 것들은 나중에 그 책을 읽었을 때를 추억하게 됩니다. 같은 내용의 책이더라고 그 사람이 처해 있는 다양한 상황에 따라서 그 책의 무게감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지난 책들은 기억의 흔적으로 많이 남게 됩니다. 우리가 예전 들었던 음악을 듣게 되면 그때가 생각나고 추억에 빠져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픈 감정의 굴레에 다시 빠지게 됩니다. 그 감정이 가끔은 신기하고 신선해서 우리는 추억의 음악을 듣습니다. 음악은 찾아서 들을 수 있지만, 종이책은 따로 찾아보지 않으면 그 기분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책을 쉽게 버리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20대 때 읽었던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 많은 줄이 쳐져 있습니다. 내가 왜 저 말에 공감했을까,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나의 그때와 주변의 친구들이 소환됩니다. 그런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에코의 위대한 강연』 열린책들, 2022     

움베르토 에코는 내가 젊은 시절 침을 잔뜩 묻혀가면서 읽었던 『장미의 이름』 저자입니다. 추억의 그 책만으로도 에코의 강연 책은 당연히 필독서 목록에 오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작가의 타계 소식을 들었을 때도 추억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너무 오래된 책이라서 책장에서 없어진 지 오래였습니다. 그 아쉬움을 달래주듯이 이 책은 에코의 ‘위대한’ 강연이 맞았습니다. 2000년, 문학, 영화, 음악, 예술, 과학, 철학의 위대함을 알리고 각 분야에서 뛰어나다고 인정받은 인사들을 불러 모아 문화 교류의 장을 마련한다는 〈실험〉의 성격으로 시작한 〈라 밀라네지아〉는, 현재 노벨 문학상, 노벨 과학상, 오스카상, 각종 국제 음악상의 수상자들을 초청하는 것은 물론 이탈리아의 14개 도시에서 열릴 정도로 유명해진 축제입니다. 에코는 2016년 타계하기 전까지 이 축제에 거의 매회 빠지지 않고 초청받았으며, 때로는 주제 선정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축제에서 에코는 축제의 의미만큼이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주제들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혁신적이라고 여기는 행위들이, 옛것과 각을 세우고 고전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임을 보여 줍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신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였던 아브라함, 히틀러가 그린 정물화의 추함, 거짓말에 관한 칸트의 어리석은 말, 비밀결사 장미 십자화, 보잘것없는 음악에 대한 프루스트의 예찬, 성 마리아와 모니카 벨루치의 이미지 등 에코는 특유의 익살과 통찰력으로 읽어 냅니다. 에코의 지식의 향연에 초대합니다.    


무엇이 최고의 조직을 만드는가』 미래의창, 2022     

경제, 경영, 자기계발서 등은 끊임없이 주기적으로 읽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내용이 많이 겹치고 그러다 보면 읽다가 그만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책은 끝까지 읽게 되는 책입니다. 그동안 쌓인 저자의 내공을 보여 주듯 성공적인 조직문화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직원이 퇴사하는 이유에 대한 고용주의 생각과 근로자의 생각이 극명하게 다릅니다. 고용주는 더 나은 조건, 보상에 대한 불만, 건강 악화 등으로 인해 근로자가 퇴사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근로자가 퇴사하는 이유는 조직에 대한 귀속감, 소속감 결여였다고 합니다. 좋은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건 물질적인 보상 같은 제도적 장치가 아닙니다. 근로자는 정서적인 측면을 채워줄 수 있는, 근로자의 성장과 역량개발 기회가 있는 조직에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어 합니다. 치과에서 일하는 스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최고의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지금은 시스템이 아닌 문화로 접근해야 할 때라고 저자는 역설합니다. 병원의 문화를 바꾸고 싶다면 내적인 기본을 다지게 해 줄 수 있는 책입니다.     


같은 일본 다른 일본』 동아시아, 2022     

일본은 늘 우리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입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그 거리만큼은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을 것만 같은 나라입니다. 일본은 미운 구석이 많아도 배울 것이 많은 나라일까요? 아니면 그저 맛있는 초밥과 라면을 먹으러 가는 관광의 나라로만 알면 그만일까요? 이 책은 미디어 인류학자인 저자가 이런 과거에 멈춰 있는 일본 사회에 대한 인상론을 극복하고자, 변화하는 일본의 현주소를 입체적인 시각으로 담아낸 책입니다. 일본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현안을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분석하고, 그것이 담고 있는 이면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냈습니다. 단순히 외부자의 시각으로 그때그때의 이슈에 대해서만 다루는 게 아니라, 18년간 일본에서 살면서 체화한 문화적 맥락을 녹여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합니다. ‘도쿄’라는 지역 공동체의 주민으로서, 일본의 대학 연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부지런히 참여 관찰을 해온 결과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일본 사회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모습과 비교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을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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