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인문학
20세기에 들어서야 제대로 된 마취제가 나왔기 때문에 그 전의 외과수술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을 것이다. 환자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수술을 하는 의사도 제정신으로 하기 힘들어서 술을 마시고 수술하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환자가 요동을 치지 않도록 묶어 놓고 곁에서 붙잡는 역할을 하던 힘 좋은 남자 간호사들에게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통으로 견디지 못해 기절하거나 쇼크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수술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나중에 아프더라도 저런 고통을 더 받느니 죽는 것이 낫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마취제가 없던 시대에서는 어떤 의사가 수술을 잘한다고 생각했을까? 정확한 시술도 중요했겠지만, 무엇보다도 환자와 주변 사람들의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는 빠른 손놀림을 가진 외과의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수술시간을 대폭 단축한 것이 가장 큰 뉴스거리였다. 수술(手術)은 말 그대로 손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손놀림이 정확하고 빠른 것이 마취를 하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도 역시 동일하게 적용된다. 정확한 시술뿐만이 아니라 빠르고 정확한 손을 신의 손, 외과의 명의라고 말한다.
우리가 수많은 분야에서 흔히 명장, 달인으로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빠르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도 빨라야 한다. 느린 손 때문에 늘어나는 시술 시간은 장시간 마취상태를 견뎌야 하는 환자로서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에게도 속도와 실력은 비례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치과의사도 그 어떤 의사보다도 손놀림이 중요한 술식을 많이 한다. 인류 최초의 치과의사로 여겨지는 피에르 포샤르도 외과 의사 포틀르레의 견습생이었으니 외과 의사 쪽에 가까운 치과의사에게도 빠르고 정확한 손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 속도와 실력은 비례한다.
하악의 매복치는 뽑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의사와 환자 모두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간혹 만만하게 봤던 상악의 사랑니 때문에 골치 아팠던 경험도 한두 번씩은 있을 것이다. 특히 파노라마 상에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가는 뿌리가 심하게 휘어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그게 뽑는 과정에서 맥없이 부러지면 시야 확보가 어려워 빼내기가 쉽지만은 않다. 뿌리까지 잘 뽑힌 것을 늘 환자와 함께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라 이런 경우에는 시간이 좀 걸려도 어떻게 해서든 뽑는다. 그렇게 힘든 발치가 끝나고 환자가 수납할 때 “고생하셨는데 비용이 생각보다 싸네요”라는 저렴한 의료수가를 만끽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오래 걸렸다고 컴플레인하는 것보다는 물론 낫지만, 수가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은 불편했다.
20여 년 전 처음 임플란트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임플란트를 시술하지 않는 치과가 많았다. 큰 병원이 아니라면 소문을 좇아서 시술하는 치과를 일부러 찾아서 가지 않으면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치과에서 임플란트 시술은 이제 일반적인 치료가 되었다. 예전과 비교하면 피막 조직을 거상 하지 않는 간단한 방법으로도 가능한 경우가 많아서 치료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다. 빠르게 시술하고 보철물도 빨리 만들어주는 말 그대로 ‘빨리빨리’ 대한민국에서 발 빠르게 발전했고 지금도 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이렇듯 빠른 시간에 수술을 마치고 수납을 하는 환자는 간혹 이렇게 말한다. “아니 이렇게 간단한 수술인데 왜 이렇게 돈을 많이 받아?”
환자가 느끼는 속도와 실력은 늘 경제적인 문제와 연관이 된다. 가격이 싼 치료가 오래 걸리는 것은 의아해하고 비싼 치료가 빨리 끝나는 것도 이해를 잘 못 한다. 빠른 시간에 시술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의사들이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을 모르고, 가격이 싼 치료라도 최선을 다해서 꼼꼼하게 치료하려는 의사의 배려를 깎아내린다.
● 말하지 않으면 환자는 모른다.
우리나라의 의료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반박할 만한 근거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접근성(Accessibility), 품질(Quality), 경제성(Affordability), 등 모든 요소를 종합해도 그렇다. 이런 수준으로 도달할 수 있었던 가장 주요한 요소는 사명감을 갖춘 우수한 의사들의 존재였다. 이런 상황과 풍조는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거니와, 한번 허물어지면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다. 웬만하면 아무나 의사 노릇을 할 수 있고, 또 그게 대중의 소망이 아니냐고 말하는 것은 조금은 무식한 착각과 탐욕과 포퓰리즘의 소산일 수도 있다. 의사의 입장을 마냥 밥그릇 지키기로 보고 무분별한 계획이 실행된다면, 의사의 수준을 하락시키고 의료와 의료계의 수준을 저열화(低劣化)하며 결국엔 우수한 인재가 의학을 외면케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아무나 쉽게 의사가 될 수 있는 비슷한 외국의 선례처럼 우리나라도 그렇게 된다면, 환자들의 의사 불신은 지금보다 더 심해지고 의사의 소극적인 진료, 발전되지 않는 술식으로 결국엔 이 악순환의 희생자는 국민 모두가 될 것이다.
환자가 의사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기대하는 의사는 이제 없다. 다만 자신의 노력에 대해서 이해해 주고 적어도 환자가 경제적인 치료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하는 것이다. 이런 기대의 이면에는 덤핑, 과잉진료 등을 일삼는 일부 의사들의 저급함에 대한 아쉬움도 물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의사들은 그렇지 않다. 환자가 지불하는 금액에 합당하게 최선을 다해 모든 시간과 노력,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보험이 적용되는 낮은 수가의 치료라고 하더라도 수가 탓을 할 뿐 환자의 치료는 철저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 대해서 환자가 그저 알아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환자들은 의료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의료진의 전문성과 경험을 판단할 식견이 없다고 보는 게 옳다. 그렇다고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을까? 그 대신 환자들은 의사와 대면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환자 자신의 과거 경험과 조합하여 판단한다. 어찌 보면 우리의 인생이 모두 그러하다. 아주 짧은 시간을 통해서 느껴지는 외면적인 느낌으로 많은 판단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수가가 낮아도 난이도가 있는 시술에 대해서 “시간에 비해서 싸다”라고 얘기하지 않게, 왜 수가가 낮으며 시간은 왜 오래 걸리는지 얘기해 줘야 한다. 비싼 치료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끝났는데 왜 이렇게 비싸”라고 얘기하지 못하도록, 빠른 술식이 중요하고 거기에 따르는 노력과 투자에 대해서도 말해줘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속도가 실력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