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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석 Aug 14. 2022

환자 고객

의료 인문학

한국영화 중 가장 잔인한 범죄 스릴러로 꼽히는 <악마를 보았다>에서 최민식의 연기에 모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그에게서도 통쾌함을 느낀 대사를 관객들이 꼽았다.

반말하는 의사에게 한 이 말은 잔인한 악마의 역할을 맡은 최민식의 말 중에서 통쾌함을 느낀 대사로 꼽혔다.

“야이 씨X아. 내가 니 새끼냐? 이런 씨X 왜 아무한테나 반말 지껄여? 안경 벗어봐. 안경 벗어봐. 아이 씨. 일루 와. 일루 와.”


바로 자기에게 반말을 하는 의사를 향해서 내뱉은 욕설이다. 이 욕설에 통쾌함을 느낀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는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꽤 많았던지, 아니면 자신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의 환자(患者)는 ‘병을 앓거나 몸을 다친 사람’을 말한다. 의사는 이를 치료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전부터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는 일종의 주종관계(主從關係)와 비슷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의사분들 중에는 아직도 환자에게 존댓말을 하지 않고 반말을 하기도 한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의사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져야 하고 환자는 의사의 말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생긴 버릇일 수도 있다.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는 흔히 교수와 학생, 부모와 자식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은 의사와 환자 관계를 처음으로 연구했다고 하는 파슨스(Parsons)의 이론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사회는 하나의 체계(one social system)이고 사회의 각 집단과 개인은 이런 체계 안에서 각각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사회가 유지된다고 한다. 그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그는 사회적 일탈로 간주하고 사회는 그를 처벌하게 된다. 흔히 범죄자가 그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범죄자는 아니지만 또 하나의 일탈자가 바로 환자인 것이다.


● 환자와 의사의 역할


환자는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하지 않는다. 아프면 학생은 결석하고 산모는 출산 후에 쉬거나 직장도 병가를 얻어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범죄자 취급을 받기는커녕 동정받고, 보호받고, 치료를 받는다. 파슨스는 ‘환자의 역할(sick role)’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환자는 일상적인 역할 수행으로부터 면제를 받는 대신 환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의 역할이란 환자는 스스로 나아지려는 노력, 즉 일상으로 복귀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자의 도움을 구하고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의 역할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질병 발생에 책임이 없다는 것, 그리고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사회적 역할로부터 면책범위가 좁아지거나 주위의 동정을 살 수 없게 된다.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성병 환자, 에이즈 환자,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자쯤 되면 범죄자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이유다. 의사는 환자를 사회에 복귀시킴으로써 사회체계를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이런 의사의 역할 때문에 그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는 의사가 우위(優位)에 서는 부모와 자식과 같은 관계로 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 환자와 의사가 모두 원하는 이익


파슨스 이후 사쯔(Szasz)와 홀랜더(Hollander)가 제안한 것이 사실 임상의들에게는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파슨스의 기본개념은 인정하면서, 환자가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데 있어서 환자와 의사의 역할분담 모델의 변형을 몇 가지 이야기하고 있다.


1. ‘능동-수동적(activity-passivity)’관계다. 이는 환자가 의사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로 마취상태나 혼수상태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그런 상태가 아니더라도 의사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2. ‘지도-협조적(guidance-cooperation)’관계다. 의사가 환자에게 지시하고 지도하고 안내하며 환자는 이에 협조하고 따르는 경우다. 주로 급성, 중증 질환인 경우 해당된다. 


3. ‘상호 참여적(mutual participation)' 관계다. 당뇨나 고혈압, 만성신부전 등의 경우에는 이 경우보다 환자의 능동적 태도가 더 중요해진다. 의사는 환자에게 지시하고 강제하기보다는 잘 설득하고 가르쳐 환자의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하게 된다. 의사가 때로는 위협적일 수도 있지만 환자의 행동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드러나지 않게 감시하고 가르치는 존재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연구한 이런 이론들의 배경에는 사회가 조화롭고 유기적인 통일체이고 이를 유지하는 절대적인 가치, 존재가 있고 의사들은 그 일부임을 전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의 사회는 이런 이론과는 다르게 대립, 상쟁하는 집단과 계급이고 이들의 동적인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 시스템이라고 보는 견해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즉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사회 다른 집단과 비슷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권리와 권한이 계속 확대되기를 원하는 존재들의 관계라는 것이다. 


● 점차 고객이 되어가는 환자


현대 사회의 질병 양상은 급성 감염성 질환에서 만성 질환으로 변화했다. 질병으로부터의 회복이라는 소극적인 개념에서 질병의 예방과 재활, 현재의 건강을 보다 나은 상태로 만들고자 하는 적극적인 개념으로 옮겨간 것이다. 위 역할 모델에서는 ‘상호 참여적’ 관계가 가장 가깝다.


‘병’을 다루는 것이 아닌 ‘건강’을 다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리’가 필요하다. 관리를 위해서는 자주 병원에 내원해야 하고 관리를 받는 환자는 ‘서비스’로 인식하게 되었다. 서비스를 받는 입장은 언제나 고객이다. 아파서 의사의 지시를 받아 치유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의사에게 상담서비스를 받는 일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환자는 의사의 지시를 받아 치유를 기대하기보다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서비스를 받는 고객의 위치로 변화했다.

의사라는 치료하는 입장에서는 환자가 맞다. 고객이라고 부르면 왠지 비즈니스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의사가 아니라 장사꾼이 되는 느낌이 들어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환자 고객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체어에 앉아 있으면 철저하게 치료를 충실하게 받아야 하는 환자로 취급한다. 하지만 의사를 직접 대면하지 않는 주차, 대기, 예약, 수납, 콜 서비스를 제공할 때에는 철저하게 고객으로 응대한다. 환자이자 고객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 환자는 체어에서 조차도 환자로 취급되기 싫어한다.


“난 하나도 아픈 데가 없고 건강한 상태를 점검받고 잘 유지하기 위해서 이렇게 병원을 찾았는데 왜 자꾸 날 환자 취급해? 환자라고 부르지 마. 지긋지긋해” 


실제로 한 어르신에게 직접 들었던 이야기다. 분명 의사의 권위를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환자에게 강압적으로 지시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모든 의사는 사실 환자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 한다. 하지만 환자는 점차 고객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 앞에서 권위를 잃지 않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변화하고 있는 의료의 패러다임에 적응해야 한다. 권위적인 의사, 환자에게 무조건적인 지시를 하는 의사는 이제 맞지 않는다. 그것은 본인이 직접 환자가 되어서 병원을 찾아가면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픈 환자로 취급되기보다는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은 고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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