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겨울에서 봄이 시작되는 정확한 순간을 우리는 알 수 있을까?
공기의 결이 바뀌는 그 찰나를 계절이 변하는 미묘한 첫 순간을 정확히 깨닫는 일은 쉽지 않다.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이 시작되는 경계를 우리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분명 어딘가에 계절의 시작점이 있었겠지만 우리는 늘 계절의 어느 순간을 지나면서야 비로소 "아, 계절이 바뀌었구나."하고 깨닫게 된다. 오늘은 봄의 첫 하루인지, 아직은 긴 겨울의 몇 번째 밤인지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대체로는 모르고 지나가는 날들이 허다하다.
한때는 내 인생에 찬란한 봄날만이 계속되기를 바랐던 적이 있다. 이별보다 사랑이, 불행보다 행복이 더 가득한 삶.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꽃봉오리처럼 망설임 없이 자라고 끝없이 뻗어가는 그런 싱그러운 날들만이 이어지는 삶이 되기를 꿈꿨다. 모든 것이 깨어나고, 새롭게 시작되고, 무엇이든 사랑하게 만드는 봄의 충만함이 좋았다. 하지만 살아보니 어떤 인생도 단 하나의 계절에만 머무를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봄이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린 겨울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고,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지나야 더 푸르러질 수 있으며, 때론 가물고 메마른 순간들의 의미를 배울 수 있어야 깊고 단단한 나만의 색을 품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봄에만 머무르는 삶이 된다면 우리는 뜨거운 여름날의 눈부신 열정과 가을빛에 무르익어가는 성숙한 열매들이 주는 기쁨 그리고 긴 겨울을 이겨내고야 비로소 맞이하는 봄의 소중함을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겨울을 겪어 본 사람만이 봄을 가장 봄스런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삶에 모든 계절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꼭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든 그것은 틀림없이 당신에게 필요한 시간일 것이다. 아직은 끝나지 않은 겨울일 수도 있고 이미 시작된 봄의 한 가운데일수도 있다. 혹은 계절이 바뀌는 어떤 경계 위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계절도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계절은 돌고 돌아 또다시 우리에게 몇 번이고 다시 도착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지금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겨울의 시간을 지나고 있을지 모른다. 아무리 애를 써도 시들어 버린 마음을 붙잡고 시린 빙하 위에 홀로 맨발로 서 있는 기분이 되어 있을지도. 하지만 그토록 시린 겨울은 끝끝내 봄을 데리고 온다. 지금 아주 오래된 기다림과 어둠 속에 머물고 있다 해도 땅속으로 더 깊은 뿌리를 내리고 긴 겨울잠을 마치고 나면 잠들었던 씨앗은 반드시 단단히 얼었던 땅을 뚫고 새 싹을 틔운다.
뜨거운 여름 속에서 숨이 턱 막히는 열기와 치열함에 지쳐 간다면 이토록 열정적인 시간이 당신으로 하여금 어떤 인생이 되고 싶은지를 깨닫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거란 사실을 잊지 않기를. 언젠가 뜨거운 갈망으로 반짝였던 지금 이 순간들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 거란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이윽고 여름을 이겨낸 푸른 잎들을 하나씩 떨구고 쓸쓸하고 조용한 숲 한가운데서 외로운 마음이 되어 있다고 해도 당신의 삶에 어떤 열매들을 거두었는지 무엇을 남기고 내려놓을지 고민할 수 있는 순간이 있음을 감사할 수 있기를. 화려함이 끝나고 텅 빈 계절의 허무함이 아니라 당신의 삶에 깊어지고 단단한 성숙함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당신이 지금 어떤 계절에 머물러 있든 그 시간을 아낌없이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기다리느라 혹은 이미 지나간 계절을 그리워하느라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허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미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많은 계절을 잘 지나왔다. 그 모든 시간들을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내고, 또 견뎌내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더라도 현재에 충실하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계절을 가장 당신답게 지나갈 수 있기를. 그렇게 걸어온 모든 시간들이 모여 결국 당신만의 가장 아름다운 사계절을 완성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