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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날들 Jul 19. 2024

여름, 감기

함께 시간을 견디는 일

"샘, 감기는 괜찮으세요?"

겨울은 말할 것도 없고 한 여름에도 감기를 끌어안고 사는 나에게

그 아이의 안부는 언제나 여름, 감기와 함께 찾아온다.


마음이 아파서 말을 잃었던 그 시절의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저 같이 시간을 견디는 일이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서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고은님의 시 한 구절을 적어주면서

아프고 불안하게 흔들리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견뎌보자고 했다.


방과 후 빈교실에 앉아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이따금 조용히 각자 책을 읽고,

운동장 한 바퀴를 산책하고,

학교 담벼락에 있는 담쟁이넝쿨을 보며 우린 서로에게 담쟁이 같은 존재라고 함께 저 벽을 기어이 넘어 보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혼자 떠들어 댔다.


그때 그 아이에게 해주었던 수많은 말들은 실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었다.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붙잡고 살았던 그때,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나에게

딱 이 여름만큼의 슬픔만 견뎌보자고 위로했었다.


짧고 뜨거웠던 계절이 지나고 아이는 전학을 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선생님, 혹시 저 기억하세요?"를 시작으로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의 첫 제자와 나는 여름의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언제, 무엇이 그 아이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모르겠지만

해마다 여름, 감기를 앓을 때마다 나는 늘 생각한다.


그저 같이 시간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지는 상처들에 대해.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들이 우리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는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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