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문학 시간에 배웠던 윤동주의 시는 별을 동경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별을 세는 것이 아니라 헤아리는 것일 거라고 화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별 하나에 사랑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따뜻한 마음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별을 헤아린다. 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별을 떠올리면 막연하게 따라오는 동경의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천문학으로 인생을 배웠다는 심채경 박사님을 보게 됐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이 책까지 읽게 되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별에 대해 반짝이는 눈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예뻤고, 누가 뭐라 하든 조곤조곤한 말투로 자신의 신념을 꿋꿋하게 전달하는 의지도 좋았다.
"저는 다른 사람을 볼 때 자기 자신을 잘 사랑하는 사람을 되게 좋아해요. 자기 자신을 잘 사랑하고 있다는 건 자기 자신의 모든 면을 잘 받아들이고 있고, 자기 자신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 한마디만으로도 충분히 그녀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애정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우주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을 무해한 사람들이라 표현했는데 자신이 하고 있는 학문에 대해 단단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학자로서의 고뇌와 엄마로서의 고민이 함께 전해지는데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도 견디고 있음이 동일시되어서인지 많은 부분 공감이 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린 왕자>의 구절을 천문학자 입장에서 해석하는 점도 흥미로웠고, 호기롭게 구입했으나 번번이 장렬히 전사하게 만드는 <코스모스> 앞에 무너지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도 좋았다. 나쓰메 소세키의 '달이 아름답네요(당신을 사랑합니다)'의 일화를 보면서도 '은파'의 의미가 아닌 자연적 현상을 분석하는 부분까지.
책을 읽다 보니 어쩜, 나와 너무 다르지만 내가 좋아할 만한 구석을 많이 가진 사람 같았다. 같은 단어를 보고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음이 전혀 이질적이지 않고 이해하고 싶은 또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는 건 역시 좋아하는 마음 때문이구나 싶다. 아마도 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이야기 역시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우주, 달, 별의 세계를 이해하는 건 내게 가늠할 수조차 없는 어려운 점자 같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들려주는 우주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든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 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 프롤로그
애들만 빨리 재우고 다시 일하리라 마음 먹지만, 실상은 자는척하려다 진짜로 잠들어버리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다. 눈을 뜨면 이미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고 어제 다 못한 일은 다시 오늘의 짐이 되어 나의 하루를 시작부터 무겁게 한다. 그러니 연구실에 홀로 남아 연구에 집중하는 밤은 정말이지 근사하다. 누군가로부터 전화도 걸려오지 않고 누군가 찾아오지도 않으며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 일을 잊어도 되는 밤. 한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한 가지 주제에 오롯이 집중해 화장실 가는 것도 잊는 그런 밤. (p.78)
<코스모스>는 인류가 기록하고 남긴 역사는 물론 그 이전의 생명역사 또 그 이전의 지구와 태양계의 형성, 마침내 우주 빅뱅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 야말로 모든 '자연'의 역사를 두루 통찰하는 빅 히스토리의 거작이다. 우주와 지구의 역사,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논하는 이 대작을 집필했을 때 칼 세이건의 나이가 사십대 중반에 불과했다는 걸 생각하면 놀랍다.(p.84)
보이저는 창백한 푸른 점을 잠시 응시한 뒤 다시 원래대로 기수를 돌렸다. 더 멀리, 통신도 닿지 않고 누구의 지령도 받지 않는 곳으로 보이저는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전진할 것이다. 지구에서부터 가지고 간 연료는 바닥이 났다. 태양의 중력은 점차 가까워지고 그 빛 조차도 너무 희미하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춥고 어둡고 광활한 우주로 묵묵히 나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p.156)
내가 어린 왕자라면 의자에 앉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소행성이 자전하는 속도에 발을 맞추어 지평선 위에 살짝 걸려 있는 해를 향해 하염없이 걸어갈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노을 속으로 더 이상 슬프지 않을 때까지.(p160)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빛 물결. '은파'는 그런 뜻이다. 푸른 여름밤의 밤바다 위로 밝은 보름달이 고요히 떠오르면 연인들은 그 달빛 아래에 앉아 달이 아름답다고 서로에게 속삭이겠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달이 아름답네'로 번역했다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를 주고받으면서.(p.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