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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래하는 한국 여자 May 30. 2021

23. 한국 여자 앞에서 차도르를 벗은 여자 2

" 당신의 딸이 차도르를 벗어야  노래를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2017년 어느 날 난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있었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딸의 음악 레슨을 위한 상담을 원한다는 한 여성분의 전화였다.


 검정 장옷에 검정 니갑을 머리에 쓴 여자분이 내 레슨실 문을 두들겼다. 검정 장갑까지 끼고 있었다. 검정 천들 속에 그녀의 두눈만 볼 수 있었다.


나에게 레슨을 맡기시는 부모들은 다 이슬람 수니파이거나 외국 생활을 좀 하신 분이시거나 중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이었고 옷차림이나 행동이 파키스탄 사람들 중 일반적으로 개방적인 분들이 대다수였다. 해서 그 여자분의 첫 상담 방문 시 그 여자분의 옷차림은 내게 궁금증을 갖게 했다.



 역시나 그 여자분은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가족과 함께 영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친 여자분이셨다.

근데 영국 살 때 옆 건물이 서양 음악 학원이었단다. 여러 음악 악기 소리는 나는데 감히 서양 음악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부모님한테 꺼내지도 못했다고 했다. 서양 음악은 그녀의 마음속 동경이었단다. 비종교적이라고 음악을 가까이 하는 것을 싫어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차 파키스탄에 돌아와 부모님이 정해 준 남자와 결혼했는데 남편 쪽 가족은 보수적 종교 집안이라고 했고 시아버지가 엄격한 분이라고 했다.


 딸과 아들을 두고 있었고 둘 다 10살 안팎이라고 했다. 문제는 시아버지가 종교적으로 엄격해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고 홈스쿨링을 한다는 말을 했다.

그녀는 그것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학교에선 불필요한 것을 가르치며 시간을 낭비한다고 했다. 특히 사립학교는 상업적이라고 했다. 내 생각엔 그녀의 말이 부분적으로 맞는 말도 있지만 어떤 상항을 편파적으로 몰아 이해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홈스쿨링이 안 좋다는 게 아니라 홈스쿨링을 어떻게 관리, 지도하는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홈스쿨링에 대해 궁금해 영국의 홈스쿨링이 어떻게 정책적으로 관리되는지 인터넷에서 찾아본 경험이 있어서였다. 홈스쿨링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엉성하게 할 거면 학교 교육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룹으로 하는 교육이 학생수가 많아 관리하기 힘들어 완벽하지는 않지만 준비 안된 부모님이 홈스쿨링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그 여자분의 딸을 만났고 몇 가지 그 학생을 위한 간단한 구두 테스트했는데 일반 학교 생활을 하는 학생들에 비해 사회성과 이해성이 약하고 균형 있는 과목 분배나 교과서 선택들이 문제였다. 영국 유학파 어머니는 홈스쿨링에 대해 자부심을 보였지만 난 다른 의견이었고 되도록 시아버지를 설득해 학교 교육으로 편입하라고 말해주었다.


 12살 정도의 딸은 실바 슈트에 차도르를 쓰고 있었다. 어린 나이인데 또래들에 비해 얼굴을 많이 가렸다. 다행히 검은색 니갑은 아니었는데 짙은 색의 실바 슈트를 입고 차도르로 눈 주위만 빼고 어깨와 머리를 감쌌다.  화려하지도 않고 밝지도 않은 옷 색깔이었다. 걸그룹들이 유행인 한국에선 초미니 반바지를 여학생들이 입는데.. 참 대조적이라고 생각했다.


 


  파키스탄 여자들은 집 밖 남성들 앞에선 차도르로 얼굴을 살짝 가린다. 도시에서는 그렇다. 시골 가면 그것보다 더 많이 가린다. 근데 여자들만이 있는 실내에선 차도르를 벗어 어깨에 걸쳐 얼굴을 보이며 얘기하는데 이 어린아이는 차도르를 내 앞에서 절대 안 벗었다.


 파키스탄 학생들이 와서 노래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레슨 시간을 나눠 피아노와 노래지도, 둘 다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만의  전통 음계 선율들이 그들의 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서양 12 음계의 핏치가 안 맞는 현상이 나타나서였다.


   노래 레슨이 시작되었다. 내가 말했다.

" 당신의 딸이 차도르를 벗어야 노래 레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해 못하겠다는 듯 날 쳐다봤다.


 노래를 배우러 왔는데 왜 차도르를 벗어야 하는가였다.


그들에게 종교적 행동은 삶 전체에 녹아있었다. 아마 이 한국 여자 선생님이 그들의 종교에 유익한지 아닌지 잠시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내가 천천히 설명했다. 학습자의 얼굴과 턱, 가슴, 목부분을 봐야 호흡과 발성을 가르칠 수 있다고.



몇 분 고민하는  우르드로 서로 대화하더니 내 말대로 딸에게 차도르를 벗으라고 학생의 어머니가 말했다.


그 소녀는 차도르를 천천히 벗었다.


 놀랍게도 그 여름에 차도르를 두 개를 하고 있었다. 하나는 가슴과 목, 하나는 얼굴과 머리 부위를 가린 것이었다. 난 한숨을 쉬었다.  최소한 입을 얼마나 벌리는지 볼 수 있어서였다. 그렇게 레슨을 시작했다.


  차도르를 쓴 여학생이나 성인을 지도할 때 공통점을 발견했다. 안면 근육을 적게 움직이고 감정 표현 시 얼굴 표정이 적다는 것이었다. 성악은 호흡과 발성이면서 안면 근육과 모든 기관의 감정을 통한 세세한 연결이다. 해서  적극적인 감정 표현과 신경과 근육의 협조가 필요하다.  상황과 같은 경우의 학습자들은 지도  시간이 더 걸린다.


 무슬림 여성들이 항상 수동적인 것은 아니다. 예외의 경우도 봤다. 그들의 명절, 며칠을 치르는 결혼식 등에선 하객으로 초대되어 전통춤과 전통 노래를 그룹으로 부르거나  파키스탄의 대중가요에 맞게 춤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먹고 마시고 오랜 친척들을 만나 많은 얘시를 하며  즐긴다. 당연히 술은 없다.


 내 예상대로 그 학생의 어머니는 걱정거리가 있어 보였다. 레슨 관련해서 시아버지와 남편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고 특히 레슨비가 문제였다. 모든 경제권이 시아버지한테 있다고 했다. 난 당연히 레슨비는 저렴하게 내렸다. '몰래 레슨'인 셈이었다. 문제는 연습이었다. 집에서  레슨 숙제를 위해 디지털 피아노나 키보드라도 연습도 하고  노래도 몇 번은 불러야 하는데... 본인의 딸이 서양음악을 한다는 것은 시아버지 앞에서 큰 일을 저지르는 행동이었다.


 한국 개화기 시절 한국땅에 와서 한국 어린 여성들을 가르치던 외국 선생님들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타임머신을 탄 듯했다.


  해서 레슨 받으러 올 때만이라도 집중하자고 하며 레슨을 시작했다. 그 어머니와 그 여학생은 서로 희망을 공유하고 때론 서로 보호하는 한 몸 같은 존재였다. 우리 한국 어머니들이 그러했듯.


  레슨을 받는 딸보다 그 어머니를 가르친다고 느낄 정도로 그 어머니는 아이처럼 기뻐했고 옆에서 따라 해보기도 하고 재밌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 어머니의 얼굴엔 시아버지에 대한 걱정이 항상 있는 듯했다.


 역시나 그 후 시아버지가 알게 되었고 화를 냈으며 '몰래 레슨'은 종료되었다.


 파키스탄에선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시골의 일부 여자 아이들이 아직도 있다 . 도시의 경우 그런 경우는 적다.  시골 출신인데 교육은 꿈도 못 꾸고 남의 집의 하녀처럼 온 여자 아이들도 있다. 적은 월급을 받고 숙식제공을 받디도 학 숙식만 해결하는 시골 가난한 아이들도 있다.

 다산인 파키스탄에선 시골 간난한 집 여자아이가 집을 떠나 밥벌이라도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도시에서 보수적인 시아버지 때문에 종교적인 이유로 학교 교육 또는 개인 지도도 못 받는 그 어린 여학생 때문에 난 한동안 기분이 안 좋았다. 그 어머니도 불안해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교육 기회가 없었다는 것은 한국에선 내 외할머니 세대의 이야기인데... 지금의 한국의 어린아이들의 삶과 얼마나 다른가.


 난 그들을 돕고 싶었는데 그녀의 문 앞에 서있다 돌아온 느낌이었다. 런던에서 그 어머니가 배우고 싶었던 것을 포기했어야  했고 그 같은 경험이 그 딸에게도 되풀이된다고 생각됐다. 그들에게 인간의 기본 행복 추구권은 먼 나라의 영화에 나오는 단어 같았다. 이방인 눈으로 본 나만의 걱정이었을까.


                            Photo by 多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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