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길,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병원에서는 신규 간호사가 들어오면 교육을 담당하는 간호사를 프리셉터라고 부른다. 나는 그 단어의 뜻이나 어원을 찾아본 적은 없지만, 그 자리에 기대되는 역할과 무게는 익히 안다.
그리고 피교육자를 프리셉티라고 부른다. 나 역시 프리셉티였고, 시간이 흘러 프리셉터라는 책임을 가져본 적이 있다.
프리셉티였던 시절에 나는 가르침을 받는 것이 어색하기보다 한 번 듣고 바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훨씬 더 컸다. 사람들은 나에게 "누가 너한테 큰 기대를 하겠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기대가 전혀 없다면 왜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고 혼내겠는가. 무언가를 기대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늘 긴장했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높게 잡았으며, 실수 하나에도 오래 머물렀다. 프리셉터가 되어보니 그 마음이 조금 더 또렷하게 이해되었다.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더 잘 아니까' 하는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말을 조심해야 하고, 때로는 기다려줘야 하며, 내가 당연히 하던 일들을 다시 언어로 설명하고, 보여주고, 반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상대가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프리셉터라는 자리를 그리 높이 보지 않는다.
“능력이 출중해서 맡는 역할이 아니다.” “때 되면 누구나 하게 되는 자리일 뿐이다.”
그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이 역할을 단지 '누구나 하는 일'로만 여기고 싶지는 않았다. 나에게 프리셉터란 한때 내가 가졌던 외로움과 불안을 잊지 않고, 누군가에게 덜어주는 자리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더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가르친다는 건, 내가 높은 곳에 있어서 내려다보는 일이 아니었다. 가끔은 나보다 나은 모습을 지닌 후배에게서 배우고, 조금 더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며 겸손해지는 일이었다.
가르치는 자리에 서면 내가 더 많이 배우게 된다. 그건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게 되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프리셉터라는 자리는 그다지 맡고 싶지 않은 자리였다. 그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가르치는 일은 단지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불안까지 함께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예전에 내가 느꼈던 것과 아주 닮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프리셉터로서 처음 만난 신규 간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별로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하기 싫으면 나가도 상관없어요.”
단호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그 안에는 간호사의 현실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이 일을 권하고 싶지 않았고, 다른 선택지를 스스로 마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신규 간호사 선생님은 처음에 조금 놀란 듯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지만, 첫 만남이었기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뒤로 시간이 좀 흘렀고, 어느 날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때, 선생님 말이 정말 제가 별로라고 생각해서 하신 말씀은 아니라고 느꼈어요. 다만, 첫 만남에 그렇게 말하신 게 좀 놀라웠을 뿐이에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내 진심이 너무 거칠게 전해진 건 아닐까 걱정했던 순간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진심은 시간이 지나면 전해진다는 것과 그 말이 곧장 이해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그렇게 말해준 건, 내가 그동안 보여준 태도와 방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기에 충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신규 간호사 선생님에게도 말했다. “제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되면 굳이 배우지 않아도 돼요. 제가 정답은 아니니까요.”
나는 그렇게 믿었다. 누구나 고유의 스타일이 있고, 일하는 방식은 결국 자기 몸에 맞게 다듬어지는 것이니까. 누군가의 방식은 참고가 될 수 있지만, 그게 반드시 본인이 따라야 할 길은 아니다.
결국, 그 신규 간호사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만의 고집과 방식대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걸 보며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가르친다는 건, 누군가를 나처럼 만들려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답게 일할 수 있도록 시간을 견뎌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르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 방식대로 일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프리셉티와 프리셉터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성인과 성인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좋은 의도와 방식으로 다가가도, 이미 자기만의 가치관이 자리 잡힌 사람에게 그건 단지 하나의 참고일 뿐이다.
그래서 항상 말했다. “더 좋은 방식이 있다면, 그걸 보고 배우세요. 저보다 더 효율적인 선생님들도 계시고, 그 방법이 더 맞을 수도 있어요.”
내가 누군가의 길을 정해주는 사람이기보다는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다.
그리고 그 사람이 똑똑하든 그렇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르칠 수 있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고, 반대로 그 역시도 본인이 습득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실수하거나 부족하다고 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건 내가 재촉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들이 보기엔 어쩌면 이상해 보였을 그와 나의 어색한 발걸음은 그렇게 천천히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