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느린 게 아니라 깊었던 시간.

원치 않았지만, 더 좋았던 시간.

by 달꼼

나는 여름보다 겨울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추운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몸을 움츠리게 되는 그 감각이 썩 반갑지만은 않다.


추운 겨울, 나는 원치 않던 신규 선생님을 받게 되었다. 당시의 나는 지쳐 있었고, 누군가를 처음부터 가르치는 게 달갑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의 눈빛을 보고 느꼈다. 내가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하면, 서로가 더 힘들어질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누군가 바람이 스치듯 그렇게 말해준 것처럼. 하지만, 그 친구는 내가 봤던 사람들 중에서도 인격적으로 참 단단한 사람이었다.


동료에게 예의를 갖추고, 환자에게 따뜻했고, 책임감 있는 태도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다만, 익숙해지는 속도가 조금 느렸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병원을 들어오기까지 2년이 걸렸다. 졸업하고도 건강 문제로 인해 일을 시작할 수 없었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공백을 딛고 다시 시작한 첫걸음이 얼마나 조심스러웠을까.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기에 에 관해 아무것도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내게 늘 사과부터 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괜히 시간 뺏은 것 같아서요.”


나는 그 친구에게 단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매번 그렇게 먼저 미안해하는 모습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아마도 본인도 다른 사람들보다 느리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내가 더 힘들까 봐 먼저 걱정했던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문책하지 않았다. 정말 화가 나지 않기도 했지만, 그 시간에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신규가 어떤 식으로 실수를 하던 크게 관심 가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한 번도 공부해 오라고 말한 적도, 숙제도 내준 적이 없다.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내가 시켜서 할 공부였으면, 애초에 스스로 했을 사람이다. 그리고 공부란 본인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과제를 준다고 해서 그게 곧 그 사람의 것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는 자투리 시간마다 함께 상황을 정리하고, 서로 질문하고 답하며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쌓인 대화 속에서 그 친구는 조금씩, 자신만의 속도로 자리를 잡아갔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게 꽤 즐거웠다. 솔직히 말하면, 생각보다 자주 웃기도 했다. 그 친구 덕분에 내 겨울은 조금은 덜 추웠고, 조금은 더 따뜻했다.


내가 프리셉터였지만, 가르침이 꼭 위에서 아래로 흐를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 스스로 걸어가도록 옆에서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게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 친구를 통해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조심스럽게 다가온 겨울의 신규 선생님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그 겨울은 생각보다 덜 추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계절의 온기를 만들어준 사람은 바로 그 친구였다.


그리고 그날은 지금도 자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