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았던 자리, 시작되지 않은 갈등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나는 프리셉터를 맡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맡게 된 것이 아니라 떠안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당시 병원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매번 바뀌는 근무표, 끊임없이 쏟아지는 업무, 여러 위험 속에서도 묵묵히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날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코로나에 감염되어 격리 중이었다.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파트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청서 올렸어. 프리셉터 해야지.” 그게 전부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할 시기를 노린 듯한 결정이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병동 안에서는 결정된 일이었고, 나는 그냥 따라야 하는 입장이었다. 사실 그 전부터 파트장님은 나에게 프리셉터를 맡길 거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지나가는 말이라 여겼다. 나보다 연차 높은 선배들도 아직 그 자리를 맡지 않았고, 그 자리는 당연히 순서대로 돌아갈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자리를 거부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선배들과의 사이가 틀어질까 봐. 프리셉터라는 자리는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한 번쯤 맡게 되는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운 자리이기도 하다.
모두가 언젠가는 하게 될 그 역할을 누군가보다 먼저 한다는 것. 그건 때로 의도하지 않은 메시지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시절, 윗년차 선생님들과 딱히 사이가 좋은 편도 아니었다. 불편한 침묵이 흐르는 날도 있었고, 감정이 얇게 쌓여 있는 듯한 거리감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먼저 프리셉터가 된다는 건, 누군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반쯤 강제로 프리셉터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 병원 전체의 프리셉터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교육장에 들어섰을 때, 주변을 둘러봤다. 나보다 연차가 낮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같은 연차 선생님 몇 분이 눈에 띄긴 했지만, 그들은 대부분 환자가 많지 않거나 간호 인력이 적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분들이었다.
그분들과 나의 상황은 같지 않았다. 병동 내에서 하루 종일 움직이며, 숨 쉴 틈도 없이 일해야 하는 구조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역할까지 맡게 된 것이었다.
처음엔 교육 내용에 집중하려 애썼다. 프리셉터의 역할, 신규 간호사의 성장 단계, 효과적인 피드백 방법 등.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교육장 밖에서 새어나오는 말들이었다.
"쟤가 하고 싶다고 먼저 말했대." "파트장이랑 평소에 친하잖아. 입 맞췄겠지 뭐." "선배들 다 제치고 왜?"
아니나 다를까, 그런 말들이 들려왔다. 누가 그랬는지는 몰랐지만, 짐작은 갔다. 나에게 별다른 애정을 느끼지 않았던, 혹은 내가 잘되기를 마뜩잖아 했던 누군가였을 것이다.
사실 충분히 예상했기에, 그 자리를 맡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오해와 시선들, 그 안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해명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파트장님은 “신경 쓰지 마. 네가 잘하니까 맡긴 거야.”라고 말했지만, 그건 말하는 입장이니까 쉽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정작 그 시선을 견뎌야 하는 건 나였고, 어색한 공기를 마주해야 하는 것도 나였다. 병동으로 돌아간 첫날,
나는 평소처럼 인사하고,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문서 작업을 했다.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는 듯 보였지만, 하루 종일 보이지 않는 시선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말하진 않았지만, “얼마나 잘하나 보자.” 그런 말이 눈빛과 분위기 속에 조용히 떠다녔다. 그 자리에 앉는다는 건, 단지 교육자가 된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키우기 전에, 먼저 내가 병동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대에 오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프리셉터가 되었고,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버티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