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는 사람 VS 이미 포기한 사람
교육이 끝나고 병동에 복귀했을 때, 정작 신규 간호사는 아직 입사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시 익숙한 루틴 속으로 돌아갔고, 여느 때처럼 환자를 보고, 투약하고, 기록지를 작성하고, 스테이션을 오갔다.
겉으로 보기엔 달라진 게 없어 보였지만, 그 며칠 사이 병동의 공기는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누가 오려나?” “괜찮은 사람 왔으면 좋겠다.. 요즘 진짜 힘들잖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제는 그냥 알아서 잘하는 사람 왔으면 좋겠어.”
스테이션 구석에서 오가는 대화들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들 속에는 기대와 긴장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이 함께 섞여 있었다.
간혹 눈치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티가 나는 말투도 있었고, 대놓고 신경 쓰는 눈빛도 있었다.
이제 그 누군가를 맞이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에 노출된 듯한 기분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이야기들이, 그날따라 유독 귓가에 오래 남았다.
그리고 종종 동기들이 슬쩍 다가와 나직하게 물었다.
“야, 진짜 니가 하고 싶다고 했어?” 그 말의 톤은 놀람과 의심, 그리고 약간의 확인 욕구로 뒤섞여 있었다.
“내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해. 어차피 하기 싫어도 나중에 다 시킬 걸. 누가 그걸 사서 하냐.”
그건 내 감정을 숨기기 위한 방패 같은 말이었다.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마치 자처한 사람처럼 여겨질 것 같았고, 또 그게 이유가 되어 누군가의 불만이 더해질까봐 귀찮았다.
동기들은 “그럼 그렇지”라며 웃고 넘겼다. 그러면서도 잊지 않고 농담처럼 던지곤 했다.
“야, 너 성격에 신규 오래 못 버티는 거 아니냐? 너 때문에 퇴사하는 거 아냐?”
그 말에 나도 웃었지만, 속으로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내 성격.
내 말투.
내 방식.
나는 늘 조용히 일했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고, 업무 외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았다.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그래요?” 하고 짧게 반응하곤 했고, 질문이 들어오면 필요한 말만 뽑아 전달했다.
그런 내 태도는 종종 ‘별로다’, ‘차갑다’는 말로 돌아오곤 했다. 그렇지만 나에겐 그것이 감정을 보호하는 방식이었다. 병동 안에서 감정적으로 얽히는 순간 일이 되고 스트레스가 된다는 걸 일찍이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거리를 두었다. 거리감은 익숙함이 되었고, 익숙함은 무심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만들었다.
그런 내가 누군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건, 솔직히 말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 흐름을 멈추지 못했고, 결국 흐름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시간은 흘렀고, 신규 간호사는 계속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며칠은 의외로 길었고, 그 사이 병동의 말 없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졌다.
“진짜 괜찮은 걸까?”
답은 늘 없었다. 그래서 질문만 쌓여갔다.
내 안에는 누군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보다, 이 사람과의 관계가 내가 감당해야 할 짐이 되면 어쩌지 하는 귀찮음과 불만이 더 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병동 스테이션이 열렸고, 신규 간호사와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게 그가 나에게 한 첫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크게 인사하는 목소리는 의외로 단단했다. 하지만, 키는 컸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깨는 움츠러들어 있었고, 고개는 숙인 채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는 눈빛이었다.
그 눈을 바라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짧은 한숨이 나왔다.
사람이 마음에 안 들었다기보다는 그 사람의 분위기, 어딘가 약해 보이는 기운, 긴장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눈동자 속에서 앞으로의 길이 쉽지 않을 거란 예감이 스쳤기 때문이다.
나는 짧게 “네, 잘 부탁해요” 라고 말한 뒤, 바로 전체 인계에 집중했다.
딱히 눈을 맞추거나 말없이 웃어주지도 않았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보다 굳이 처음부터 무언가를 포장해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 하고, 이 사람과는 긴 시간을 마주해야 하니까. 괜한 기대도 과한 환영도 모두에게 불편한 일이 될 수 있었다.
그날의 나는, 그저 피로했고, 준비되지 않았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그를 잘 이끌 수 있을지, 나와 잘 맞을지.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서로가 병동이라는 현실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는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