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말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

신규 간호사와 선배 사이에서 배우는 조직 내 생존법

by 달꼼

병동은 언제나 분주하다. 환자가 몰리고, 검사와 시술 일정도 촘촘하다 보니 쉴 틈 없이 뛰어다닌다.


신규 간호사가 동맥 채혈을 하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고, 나는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라인을 반대로 돌려서 피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행히 내가 바로 가서 교정해줬고, 환자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 일 자체는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했지만, 병동 내에서는 은근한 파장이 일었다.

며칠 후, 내 동기 중 한 명이 다가와 말했다.

“너 뭐라고 안 했냐? 선생님들이 그거 가지고 네 뒷담 하더라. 좀 조심해.”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뻔히 알았다. 나는 후배들에게는 지적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몇몇 선배들과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있었고, 그분들은 내가 인정하지 않고 대우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듯 했다.


그래서 그런 소문들이 내 뒤에서 돌고 있었다.

사실, 내 프리셉티였던 그 친구와 나는 근무가 맞지 않는 날도 있었다.


나와 함께 근무하지 않는 날에는 다른 선생님과 함께 일했는데, 그곳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 그 뒤로 좋지 않은 소문이 병동 내에서 돌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조금씩 과장되었고, 때로는 없는 이야기가 덧붙여지기도 했다. 완전히 사실이 아닌 이야기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그렇게 느꼈기에 그런 소문이 생긴 것이다.


병동내에서 이런 일이 그다지 보기 드문 일은 아니다.

신규 간호사가 실수하면, 선배들이 다그치고 신규는 지쳐가는 뻔한 클리셰. 병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직장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일부러 혼내지 않았다. 그 실수는 환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스스로 깨닫고 성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는 선택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선택 때문에 오해가 쌓이고, 불만이 커지기도 했다. 그런 시선들은 나를 외롭게 만들었고, 내 마음 한편에는 끊임없이 질문이 생겼다.


‘내가 잘못한 걸까? 아니면 이렇게 조용히 기다리는 게 맞는 걸까?’

그리고 그 날 저녁, 병동 휴게실에서 동기들과 마주쳤다. 서로 지친 얼굴로 물 한잔씩 들고 있었는데, 분위기는 무겁고 조용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 좀 바쁘네, 입원이 너무 많은 것 같아. 퇴원한만큼 하루 만에 다시 입원해버리네.”

한 동기가 어깨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근데 네가 그 일로 조용히 넘겼다는 얘기 듣고 좀 놀랐어.”


또 다른 동기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내가 보기엔, 그런 실수는 그냥 넘기면 안 되는 문제 같아. 가끔은 쓴소리도 해야 돼. 그래야 더 신경 쓰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런데 너무 크게 다그치면 오히려 서로 더 힘들지 않아? 그 친구가 지치고 위축될 수도 있잖아.”


첫 번째 동기가 반론했다.

“물론 이해는 하는데… 지나치게 관대하면 같은 일이 반복될 거야. 그러면 모두가 더 힘들어지는 거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근데 그 실수가 그렇게 심각한거야?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두 번째 동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래도 지금 병동 분위기가 좀 어수선 하잖아. 신규는 작은 실수도 크게 부풀려지니까. 그게 문제야.”


나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말했다.

“맞아. 그래서 난 조용히 기다리는 쪽을 택했어. 말하는 게 꼭 답은 아니더라. 때론 침묵이 더 큰 메시지가 될 때도 있잖아.”


첫 번째 동기가 진지하게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되는데, 그 자리에서 뭔가 얘기했으면 분위기가 달라졌을지도 몰라.”

나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랬으면 더 좋았을 거야. 근데, 너희들도 알다시피 말하고 생길 파장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거지.”


두 번째 동기가 말했다.
“조금씩 천천히 해봐. 힘들 때 말해도 돼.”

그 순간, 묵직했던 긴장감이 살짝 풀리고 따뜻한 온기가 휴게실을 감쌌다. 그들과 대화하며 혼자가 아님을 다시 느꼈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늘 고되고 바쁘다. 교대 근무, 끊임없는 환자 케어, 정신적·육체적 부담이 크다. 더군다나 조직문화는 종종 냉정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철판이 두꺼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상처를 크게 받지 않고 넘어가는 힘, 견디는 힘이 필요하다. 그게 바람직한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이다.


내가 후배들에게 한 말이 떠오른다.
“그릇의 크기는 남이 정해주는 게 아니라 네가 만드는 거야.” 그 말처럼, 나도 내 그릇을 조금씩 키우고 있다.


그리고, 그릇이 두꺼워진다는 건, 상처에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도 포함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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