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릇 이야기.
그날은 아침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활력 징후가 미묘하게 불안한 환자가 있었고, 경험 많은 간호사라면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그런 낌새였다.
조용하지만 어딘가 흐트러진 공기, 잠잠한 것 같으면서도 어수선한 분위기. 결국, 기어코 응급상황이 터졌다.
선생님 호출에 정신없이 움직이는 와중에 나는 신규 간호사에게 상대적으로 덜 복잡한 일을 맡겼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그 아이가 실제로 직접 해볼 수 있는 일, 그동안 반복적으로 설명해온 일이기도 했다.
동맥 라인 채혈. 그 자체로 아주 어려운 기술은 아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신규에게 응급 상황이 진행 중인 현장에서 그 단순함은 종종 두려움으로 바뀐다.
어수선한 분위기, 갑자기 달라진 동료들의 말투, 단호하고 빠르게 바뀌는 지시, 그리고 그 안에서 자리 잡지 못한 자신.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몰려와, 간단한 일 하나조차도 ‘잘못되면 어쩌지’라는 불안으로 바뀌는 법이다. 시간이 꽤 흘렀다. 응급 처치는 거의 마무리 되어 가는데, 그 친구는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하는 마음에 조용히 복도 끝으로 나가봤다.
당황한 표정으로 굳어있는 신규 간호사가 보였다.
"왜 아직 못 했어요?"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다그칠 의도는 없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급하게 들렸을 수도 있다.
그 아이는 움찔하며 말했다. “원래 피가 나왔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안 나와요…”
뭔가 이상했다. 라인에 문제가 생긴 건가 싶어 직접 손을 뻗어 확인해봤다. 그런데 채혈 주사기를 들고 입구가 막힌 상태에서 계속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가 나와야 할 방향의 벨브를 반대로 돌려 길목을 막아둔 채로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시도해도 피는 나오지 않고, 주사기는 막힌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아, 이런 실수였구나."
나는 짧게 미간을 찌푸렸다. 감정보다, 상황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곧 조용히 말했다.
“반대로 돌려보세요.”
신규 간호사는 내 말을 따라 천천히 방향을 바꿨다. 그러자 금세 주사기 안으로 피가 천천히 차올랐다.
문제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처음엔 누구나 하는 실수.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실망으로 다가온다.
응급 상황은 그렇게 정리되었고 우리는 기록과 뒤처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나는 별일 없다는 듯 업무를 정리했지만, 신규 간호사의 표정은 줄곧 어두웠다.
작게 인사하고 자리를 피해 다니는 모습에서 그 아이가 얼마나 위축되어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조심스럽게 다가온 그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나요? 그릇의 크기는 남이 정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정하는 거라고.”
그 신규 간호사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날은 아무리 잘해도 혼나는 날이 있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못했는데도 혼나지 않는 날도 있어요. 근데 우리가 기억하는 건, 외부의 평가보다는 내 마음이에요."
"오늘 그릇에 하나를 채웠으니까, 다음엔 다른 걸로 채우면 돼요. 그게 모여서 더 큰 그릇이 되는 거고요.”
그 아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어깨는 조금 덜 무거워 보였다.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해요. 독립하기 전에 이런 실수를 한 게. 혼자 있었을 때 그랬다면 훨씬 더 큰 사고로 번졌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심하게 혼났을지도 모르죠. 그런 걸 생각하면,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에요.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요.”
그 말을 전하면서 나도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내가 전해주고 싶었던 말은 괜찮다가 아니었다.
‘그 실패를 통해 배우고 있음을 알아차려라’ 그것이었다.
누구나 준비된 채 시작하지는 않는다. 일하면서 조금씩 준비되고, 실수하면서 하나씩 깨달으며, 자신의 속도대로 성장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