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알려줄 순 없지만, 감각을 남길 수 있다면
그날 했던 말들은 그냥 지나치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했고, 그 책임의 방식은 기다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조금 다른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신규 간호사가 들어온 첫 한 달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교육 기간은 보통 8주, 하지만 많은 일이 벌어지는 건 대부분 마지막 달 즈음부터다.
그 시기가 되면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로 병동을 오가고, 사소한 것에도 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누구나 그렇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짧다는 건 다들 알지만, 그 안에 모든 걸 밀어 넣으려는 게 현실이다. 많은 선생님들은 어떻게든 더 많이 알려주고, 빨리 독립시키려 애쓴다.
하지만 나는 좀 달랐다. 그저 말로 알려주는 건, 결국 언젠가 잊히게 마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부분은 "알려줬는데 왜 못 해?"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건 너무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모르는 건 자연스럽다고 여기지만, 남이 모르면 무식하다고 판단한다.
그 모순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기억보다 이해에, 정보 전달보다 판단 능력을 기르는 데 더 집중하려 했다.
물론 감정의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다. 같은 걸 여러 번 말해야 할 때면 답답하기도 했고, 말하면서 한숨이 나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웬만한 일들은 한숨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크게 다그치지 않았던 건, 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신규였던 시절에는 단순 반복 업무 외의 일은 대부분 말로만 들었다.
"이건 나중에." "그건 다음에 해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들었던 말들 속에서 실제로 해보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막상 낯선 상황을 처음 마주하면 손이 굳고, 머리가 하얘지기 마련이다.
그건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실수를 피하게 하기보단, 실수를 마주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일이란, 아무리 오래 해도 처음 겪는 상황은 계속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진짜 중요한 건 지식이나 경험보다 융통성이다. 모든 걸 배워서 일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길러주고 싶었다.
"이건 이래야 해"라는 정답보다, "지금은 이렇게 해도 괜찮다"는 감각. 그 감각은 말로는 전해지지 않는다. 겪어봐야만 알게 된다.
가끔은 그게 미흡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왜 이건 안 알려줬을까?"라는 의문을 가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모든 걸 알려줄 수는 없어도,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은 길러줄 수 있다고.
그게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번 익힌 감각은 쉽게 잊히지 않으니까.
병원 교육 체계가 점점 더 체계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요즘은 프리셉터가 일일이 공부를 시키지 않아도, 신규 간호사들이 어느 정도 학습된 상태로 병동에 나온다. 그렇다 보니 나는 공부를 일부러 시키려고 하진 않았다. 게다가 할 사람은 알아서 하고, 시켜도 안 할 사람은 안 한다.
본질은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기술은 책으로 가르칠 수 없다. 그건 시간 속에서 실패와 눈치, 기다림 속에서 몸으로 익혀야만 얻을 수 있는 거니까.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학생 때 우리가 배웠던 것들과 실제 현장에서 마주하는 상황 사이의 가장 큰 괴리감은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자각에서 시작된다.
학생 시절의 우리는 늘 관찰자의 입장에 있었다. 몸을 움직이기보다 머리로 먼저 판단하고, 실수를 하기보다는 메모를 먼저 했다. 그러다 보면 머리는 점점 두꺼워지고, 몸은 점점 굳어간다. 현장에 처음 나왔을 때, 그 머리를 뚫고 손을 움직이게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공부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낀 것이 있었다. 눈앞의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환자가 아닌 보호자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위급 상황이 생겼을 때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은 책이나 강의로는 절대 배울 수 없다.
특히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때, 설명을 해야 할 때, 그저 아는 걸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그 순간 필요한 건 정보가 아니라 태도고, 내용이 아니라 전달 방식이다.
나는 그런 보이지 않는 기술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신규 간호사에게도 그 감각을 조금이라도 전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요즘은 전체적으로 교육 체계가 이전보다 훨씬 정비되고, 신규 간호사를 위한 지원도 많아지는 추세다.
분명 좋은 변화다. 신규 간호사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되고, 병동도 이전보다 훨씬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때때로 그런 분위기가 너무 경직된 방향으로 흐를 위험성도 있다고 느꼈다. 누군가가 늘 옆에서 알려주는 건 분명 좋은 신호이지만, 모든 상황이 그렇게 ‘알려주는 구조’에 맞춰 돌아가는 건 아니다.
모든 직장이 그렇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유동적이고, 예외투성이다. 그래서 때로는 조금은 강하게 나와야 할 때도 있고,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여유 없는 순간들도 견뎌내야 한다.
그걸 모두 누군가가 안 알려줘서 생긴 일로만 해석하면, 결국에는 책임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미루게 되는 구조가 된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약자에게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나는 거기에 조금 다른 생각을 보탠다. 신규 간호사가 약자라고 해서, 기존에 일하고 있던 선배 간호사들이 강자였던 적은 없었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불완전했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버티는 방식으로 살아남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결국, 모두가 약자다.
그 안에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가와 균형을 누가, 어떻게 잡아주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균형은 구조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결국 그것을 운용하는 건 사람이고, 사람의 인성이나 태도에 따라 그 무게는 얼마든지 기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늘 한 가지 질문을 한다. 이 사람이 지금 하는 말은 제도 안에서 주어진 역할인가, 아니면 그 사람의 의지일까?라고.
결국엔 정답이 없다는 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누구는 빨리 배우고, 누구는 천천히 따라온다.
누구는 먼저 부딪히고, 누구는 보고 있다가 움직인다. 누구는 말을 걸고, 누구는 눈치를 본다. 그 모든 차이는 누가 더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걷고 있는 속도와 방향이 다를 뿐이다.
어느새 신규 간호사를 바라보던 시선도, 이전에 내가 받았던 시선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건 아마도 시간 때문일 수도 있고, 한 번쯤은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은 잊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현장은 바쁘고, 배워야 할 건 많고, 모두가 자기 일로도 벅찬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누군가의 실수에 한숨이 나올 때도, 한 번 더 설명해 주는 게 지치는 날도 있다.
그럴 때 그냥 생각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이 사람도 어쩌면 속으로는 열심히 따라잡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누구도 완성된 채로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니 너무 쉽게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조금 덜 실망하고,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었으면 한다.
그 정도면, 우리는 생각보다 꽤 괜찮은 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