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대신 건넨 질문, 그날의 마음.
신규 간호사가 입사한 지 딱 일주일쯤 되었을 때였다.
매일 옆에서 관찰하고, 질문하고, 메모하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언젠가는 직접 해야 할 때가 온다. 교육 기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고, 병원이라는 곳은 항상 분주하고 또 바빴기에 그날은 그녀가 처음으로 나와 함께 직접 라운딩에 나서는 날이었다.
라운딩은 단순히 침상 사이를 오가는 일이 아니다. 환자의 표정을 살피고, 상태를 묻고, 기록하고, 검사 스케줄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직접 요청을 넣기도 한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 환자나 보호자의 반응이 달라지는 이 공간에서 신규 간호사는 긴장된 얼굴로 하나하나 따라 했다.
처음에는 내가 먼저 물었다.
"오늘 몸 상태 어떠세요?"
그 다음에는 그녀가 물었다.
"식사는 조금 하셨어요?"
아주 짧은 문장이지만 처음 스스로 내뱉는 질문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작은 성취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것이 그녀가 실무로 들어가는 첫 단추라는 걸 알고 있었다.
라운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검사지를 정리하던 그녀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검사 오더를 하나 빠뜨린 걸 알아챈 것이다.
"이건 제가 다시 요청해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눈치를 보듯 내 얼굴을 살폈고,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수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실수를 복구하는 방식은 배워야 한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병동에 첫 발을 들이는 대부분의 신규 간호사들은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한 번에 잘해야 한다.", "익숙해 보여야 한다." 마치 처음부터 잘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할 것처럼.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금세 낙오자가 될 것처럼 쉴 틈 없이 긴장한 채 하루를 버텨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문제는 실수 그 자체보다는 실수가 반복될 때 생기는 인내심의 마찰에서 비롯된다는 걸. 어쩌면 가장 무서운 건 실수한 사람이 아니라, 그 실수를 처음 대하는 주변 사람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괜찮아, 다음엔 이렇게 해보자" 라는 말이 한두 번은 위로가 되지만, 세 번, 네 번이 되면 어느 순간 말의 온도도, 표정도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그녀는 아마 그걸 감지했던 것 같다. 첫 번째 실수는 누구나 한다고 생각했지만, 두 번째, 세 번째가 되면서
눈치를 보게 되고, 숨소리를 죽이게 되고, 말없이 더 뛰게 된다.
그날도 그녀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병동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검사지를 다시 출력하고, 보호자에게 다시 설명하고, 누락된 투약을 챙기기 위해 또 한 번 처치실 쪽으로 향했다.
마치 자신의 실수를 뛰는 속도로 만회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그 모습을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는 겪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자기 실수를 스스로 복기할 수 있도록, 내가 대신 회수해주는 실수도 있지만, 일부는 직접 마주하게 해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날 그녀에게는 중요한 일이 하나 주어졌다. 처방된 항생제를 수액에 섞어 직접 투약하는 일.
검사는 전화 한 통이면 끝나는 일이지만, 약물 투약은 그렇지 않다. 이름, 용량, 약물 종류, 주입 경로, 투약 시간. 어떤 단계에서도 확인이 빠지면 곧바로 사고가 된다.
병동은 여전히 분주했고, 그녀는 작은 쟁반에 수액과 주사기, 항생제를 담아 환자 방으로 향했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봤다. 한껏 집중한 얼굴, 말없이 움직이는 손. 모든 것이 평온해 보였지만, 내가 본 바로는 그 약은 A 환자가 아니라 B 환자에게 들어가야 했다.
약물 자체는 같았다. 같은 항생제, 같은 용량. 단지 환자가 바뀌었을 뿐이었다. 간호사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이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환자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근본적 문제에서 비롯된 과오다.
나는 곧장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방에서 나오는 순간까지 기다렸다. 약간은 안도한 표정이 스치듯 보였다.
그때 조용히 물었다.
“뭔가 이상한 거 없었어요?”
그 말은 얼핏 들으면 문책처럼 들릴 수도 있다. 실수를 지적하려는 질문처럼 보일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저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가 자신이 한 일을 스스로 돌아보고 있는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본인이 실수를 알아차릴 수 있는지.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눈이 조금 커졌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차트와 메모를 번갈아 보며 다시 복도 끝을 향해 뛰어갔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걸음은 빨라졌고, 목덜미엔 땀이 맺혔다.
나는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잘못했어요.’라는 말보다, 자기 실수를 알아차리고 고치려는 움직임이 더 많은 걸 말해준다는 걸 느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곤 이내 돌아왔다. 그녀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말 대신 눈빛으로 알아차렸다는 것과 두렵다는 것과 다음엔 그러지 않겠다는 마음이 묻어나는 눈이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처럼 크게 웃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이유는 분위기를 잡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단지, 그 상황에서 내가 동요하면 그녀가 더 크게 흔들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수가 있더라도, 내가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해야 그녀가 그 실수를 지나갈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기보다, 다음에 다시 마주할 수 있는 일로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때 나는 말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워가던 중이었다. 그건 내 방식의 조용한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 근무가 끝난 후에 그녀에게서 카카오톡 메세지가 왔다.
"죄송해요 선생님, 오늘 저 때문에 괜히..ㅠㅠ"
그게 우리가 처음 나눈 개인적인 연락이었다. 근무 전에 연락할 일도 생길 수 있으니까 번호를 주긴 했지만, 먼저 연락을 해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의 실수를 알고 있고, 그것에 대해 돌아보고 있기에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짧은 문장이라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쉽게 느껴진다.
그 후엔, 파트장님이 나를 잠깐 부르셨다.
"오늘 실수한 거 가지고 많이 속앓이 하더라. 좀 신경 써. 그리고 아무 말도 안 했다며? 일부러 그런 거야? 얘가 오히려 더 긴장한 것 같던데?"
웃음이 나왔다.
내가 아무 말 안 한 게, 어쩌면 더 무섭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그렇다. 조용한 방식은 때로는 더 무겁게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저 조용히 있어주는 것이 그녀에게 더 큰 여지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그 실수 앞에서 얼마나 당황했고,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바라보는 일, 그게 내가 프리셉터로서 처음 배운 ‘가르치는 것과 기다리는 것의 차이’였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파트장님께 그렇게 말씀드렸다.
“말해도 뭐라고 하시고, 안 해도 뭐라고 하실 거면서요. 그래서 다른 사람 시키라고 진작에 말씀드렸잖아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