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인정과 불신 그 사이

칭찬도, 비난도 결국 지나간다.

by 달꼼

병동은 여전히 바빴지만, 이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신규 간호사의 채혈 실수 이후, 나의 침묵은 한동안 오해와 소문의 씨앗이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상황이 변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외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유연함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사실, 당시의 분위기는 단순한 오해를 넘어 일종의 견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나의 방식에 간섭하는 이는 없었지만, 그것이 나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차피 가르치는 건 너니까라는 식의 거리 두기였다. 내가 하지 않으면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되어버리기에 그들의 침묵은 일종의 계산된 무관심이었고, 그 안에는 ‘그럼 어디 한번 잘해봐’라는 냉소적인 기대도 함께 들어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파트장님에게 불려 가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어느 날 오후, 인계가 끝난 뒤 파트장님이 조용히 말했다.


“시간 좀 괜찮아? 잠깐 이야기 좀 하자.”


파트장님 방으로 들어선 순간, 나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신규 간호사 교육 방식에 대해 말이 좀 있더라”는 첫마디가 이어졌고, “너무 지켜만 보는 것 같다”, “필요할 땐 명확하게 짚어줘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 뒤따랐다.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사실 그 말들 모두 틀린 건 아니었다.

신규 간호사의 실수가 병동 전체의 업무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그건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들의 기대처럼 내가 매번 즉각적인 피드백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도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혹시 네가 너무 관대하게 대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그래. 그 친구도 네 반응을 보고 괜찮은 줄 알 수도 있잖아.”


그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그 아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느끼고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다음 상황에서 그 아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려고요. 혼나면 피하게 되지만, 스스로 이해하면 바뀐다고 생각해서요.”


파트장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맞지. 근데 병동은 단체니까, 상황에 따라선 좀 더 명확히 짚어주는 것도 필요해. 오해가 쌓이지 않게 네 의도를 미리 설명해 두는 것도 중요하고.”


나의 방식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눈엔 여전히 미흡한 교육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보여주고 있는 것과 실제로 하고 있는 것 사이의 간극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며칠 뒤, 병동 선배 한 분이 점심시간에 불쑥 말을 걸었다.

“네 프리셉티, 요즘 많이 늘었더라? 처음엔 좀 불안했는데, 이젠 꽤 안정적으로 보이네.”


그 말에 나는 그저 희미하게 웃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 말이 진심이라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단지, 지금 당장 눈에 띄는 실수가 없다는 데서 비롯된 일시적 승인 같았다.


‘뭐, 얼마나 그 평가가 지속될지는 모르겠네.’ 속으로는 그렇게 반응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선들에 대해서는 나뿐만 아니라, 그 신규 간호사 역시도 의식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런 분위기 때문에, 그녀는 더 긴장했고, 조심스럽게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뭐 대단한 걸 해준 건 없다. 그녀가 성장한 건 본인의 의지 덕분이었다. 나는 그저 지켜봤을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 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선생님들이 있었고, 그런 불편한 감정은 종종 사소한 행동으로 드러났다.


인계 시간에 굳이 신규 간호사 앞에서 사소한 걸 지적하거나 말꼬리를 잡는 방식으로 내 자존심을 건드리려 했다. 일부러 보란 듯이 말하는 경우도 있었고, 내가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정색하며 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행동들은 너무 의도가 뻔해서 상처가 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런 모습들이 더 하찮고 유치해 보였다.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인 건, 그런 상황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눈치를 보는 프리셉티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눈빛에 담긴 당황스러움과 불편함을.


나는 오히려 그 장면이 더 눈에 거슬렸다. 내가 아니라 그녀가 상처받고, 위축되게 만드는 환경이 답답했다.


그 와중에 웃긴 일도 있었다. 교육팀에서 프리셉티와 면담을 했는데, 그 아이가 나에 대해 좋게 이야기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윗선 관리자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훌륭한 프리셉터’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고, 한 간호과장님은 따로 언급하며 격려까지 해주셨다.


“선생님이 그렇게 열심히 해주시고 계시다면서요? 고맙습니다.”


칭찬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허탈했다.


정작 나는 지금도 병동에서 눈치 보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고, 내 방식은 여전히 의심받고 있으며, 사소한 인계조차 편하게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현장의 내 모습은 여전히 시궁창인데, 윗사람들 눈에는 빛이 나는 사람처럼 비치고 있다는 것. 그 간극이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그건 마치,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느낌이었다. 외부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지만, 그게 실질적인 보호막이 되어주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더 공허했다. 그 모든 칭찬이 나에게는 오히려 희망 고문처럼 느껴졌다.


다만, 나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조금씩 중심을 잡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불편한 시선이 있고, 여전히 내가 선택한 방식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내 방식으로 변화하는 단 한 사람을 지켜보는 일이 점점 소중해졌다.


내 프리셉트는 실수 이후 더 단단해졌고, 질문하는 횟수도 늘었으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은 능숙하게 채혈을 마치고 환자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네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건 단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변화였다.


이제는 나도 안다. 견디는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나의 방식이 옳냐가 아니라, 내가 진짜로 이 아이의 성장을 바라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나 자신을 얼마나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가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긴장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병동이란 게 원래 좀 덜컥거리는 곳 아니던가. 오늘도 어김없이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지만, 가끔은 그런 하루의 끝에서 ‘괜찮았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뭐, 해보는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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