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좋은 간호사, 나쁜 간호사

약자 멸시의 패시브, 그리고 그 끝

by 달꼼

“환자에게는 참 친절하던데.”


간혹 그런 말을 들으면, 한 박자 늦게 반응하게 된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간호사가 동료들에게는 얼마나 차갑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선별해 대하는지를.


겉으로 보기에 그는 아주 모범적인 간호사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정해진 업무를 정확히 처리하고, 환자 응대에도 실수가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동료에게 보이는 태도는 그 모든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일터에는 늘 두 얼굴의 사람들이 있다.


환자 앞에서는 따뜻한 말을 건네고, 손을 다정히 잡아주고, 미소로 응대하지만, 신규 간호사나 후배 직원에게는 눈을 피하거나 말끝을 흐리고, 때로는 불필요하게 까칠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대상이 본인보다 아래라고 여겨질 때, 유독 그런 모습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친절의 문제가 아니라 위계의 문제였다.


본인이 차갑게 지적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해서라도 위에 서고 싶은 욕구가 내면에 깔려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도 늘 그런 건 아니다.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는 의외로 부드러운 척, 말도 예쁘게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없을 때나, 그다지 영향력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 앞에서는 금세 그 가면을 벗어버린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씁쓸해진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고, 그렇게까지 자신을 지키고 싶을까 싶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나도 우스갯소리처럼 이렇게 말했다.


“패시브가 약자 멸시야. 근데 그 약자 멸시에 본인도 포함돼. 본인도 약자인데, 그걸 아직도 못 깨닫는 거지. 저거 봐. 결국 깨지잖아.”


정말 그렇다. 그들은 아래를 향해 눈을 내리깔면서도, 자신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위치가 얼마나 불안정했는지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곁을 떠나고, 결국 혼자가 된다. 그런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때론 무섭기도 했다.

프리셉터로서 신규 간호사를 가르치면서 나는 그런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신규 간호사들은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크게 흔들린다.


“저 선생님은 왜 저한테만 그러시는 걸까요?” “제가 뭘 잘못했을까요?”

그렇게 자신을 의심하고, 스스로를 작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답처럼 포장된 위로 대신, 현실적인 대답을 건넸다.


“나도 그 선생님 상대하기 힘들어. 그냥 만나야 하는 날엔 그런가 보다 하고, 최대한 할 말만 하고 있어. 왜 그러시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마음이 좀 아프신가 보지 뭐…”


웃으며 툭 던진 말이었지만, 그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기를 바랐다. 너무 애쓰지 말고, 굳이 정답을 찾으려 들지 말라고. 그리고 어떤 간호사가 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고.

이렇게 훈계하듯 말하는 것보다, “나도 몰라, 나도 힘들어”라는 말이 그들에겐 더 필요한 말이었다.

사실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선배였던 적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말 걸기 어려운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조심스러웠다. 내가 지적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언젠가 내 안에서 발견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믿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좋은 간호사란, 환자에게만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동료에게도 존중을 보일 줄 아는 사람.

실수가 나왔을 때, 그것을 잡아내는 것보다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 그게 내가 생각하는 진짜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걸 나는 후배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지적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건 아니라고. 그 위치는 누군가가 인정해서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태도로 버티느냐로 증명된다고.


내가 중심을 잡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저, 그런 사람들을 피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언젠가는 그들이 혼자가 된다는 걸 알게 되는 날이 올 거라는 것.


그것만큼은 알려주고 싶었다. 그건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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