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어디까지 말해줘야 할까

동행과 거리두기 그 사이

by 달꼼

독립을 앞둔다는 건, 생각보다 더 큰 긴장을 동반한다. 누군가는 점점 익숙해진다고 표현하지만, 나는 그 시기를 점점 외로워지는 때라고 기억한다.


실수는 여전히 두렵고, 실력은 아직 어설픈데, 주변에서는 슬슬 기대를 거는 시점. 그건 신규 간호사뿐 아니라 프리셉터인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그 친구가 독립하기 대략 3~4주 전이었을 거다. 눈에 띄게 업무량이 많아졌고, 예전처럼 작은 실수 하나하나를 눈감아주지 않는 분위기가 생겼다.


조금이라도 인계가 누락되면 "이제 독립해야 하지 않아?"라는 말이 무섭게 들어왔다.

그 친구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신규라는 말보다 한 명의 간호사로 더 큰 책임을 지기 시작했다는 걸.


그런 시점은 언제나 부담을 동반한다. 혼나는 빈도는 잦아지고, 실수 하나에 대한 반응도 훨씬 날카로워진다.


"괜찮아, 처음엔 다 그래"라는 말로 덮였던 일이 "이제는 알 때도 되지 않았어?" 라는 말로 되돌아온다.


그 무게는 때때로 실수 자체보다 더 사람을 작게 만든다. 그 시기쯤이면 누구든 늘 고민하게 된다.

‘어디까지 말해줘야 할까?’


말을 해주면 실수를 줄이고 덜 혼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자주 개입하면 혼자서 판단하고 움직이는 능력을 키우지 못할 수도 있다.


도와주고 빨리 끝내자는 마음과 스스로 해보게 놔두고 싶다는 마음이 번갈아 가며 고개를 든다.


어느 날은 인계가 끝난 뒤였다. 그 친구가 인계 중에 하나를 빠뜨렸고, 나는 그걸 알고 있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생각이었고,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담당 주치의가 해당 내용을 놓치고 업무를 처리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리고 화살은 그 친구에게 돌아갔다.


“그건 미리 말했어야지.” 그 말 한마디에 그 친구는 사색이 되었고, 결국 당일 오후엔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날 밤, 퇴근 준비를 하던 나에게 그 친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은 아셨던 거죠? 인계 빠진 거요.”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왜 말씀 안 해주셨어요?”

“말해주면 안 혼났겠지만, 그게 정말 도움이 될까 싶었어요. 한 번 겪고 나면 다시 빠뜨리지 않잖아요.”
그 친구는 말없이 내 얼굴을 잠깐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 건지, 받아들인 건지는 모른다.


그런 대화 뒤엔 항상 복잡한 감정이 든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느꼈다. 인계 전에 몇 번이고 리스트를 확인하고, 동료와 함께 더블체크를 하기도 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시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점점 변해갔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누가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본인이 중심을 잡는 시기. 그건 정답을 누가 알려줘서가 아니라, 스스로 찾아내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양가적이다.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버린 건 아니다. 끝까지 챙긴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시한 것도 아니다.


어떤 날은 마음이 약해져서 미리 다 알려주기도 했고, 어떤 날은 이번엔 그냥 한번 부딪히게 두자며 물러서기도 했다. 그 모든 선택이 늘 옳았던 건 아니지만, 그때마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그 친구가 실수하지 않는 간호사보다, 자기 실수를 돌아볼 수 있는 간호사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느 날, 그 친구가 웃으며 이런 말을 했다.


“요즘은 잘 안 도와주시네요. 그래도 알고 있어요. 도와주고 싶지 않아서 안 도와주시는 건 아니라는 거.”


말은 농담처럼 툭 던졌지만,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걸 알아채는 순간, 조금은 성장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도와주지 않는 선택을 해야 했다. 조금 느리고, 흔들리더라도.


독립은 누군가를 밀어내는 일이 아니다. 옆에 있으면서도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일이다. 그 사람이 뒤를 돌아봤을 때, 여전히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일. 그 역할은 생각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고 섬세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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