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안해도 혼나는 시기
처음부터 순조로운 독립이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랬고, 그 친구도 지금 그러고 있었다.
본인이 하려는 의지는 분명 있었지만, 여전히 실수는 많았고, 체크리스트를 확인해도 빠뜨리는 것들이 있었다. 의지가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그 친구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직장이라는 곳이 그런 공간이다.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걸 인정해주는 건 아니다.
결국 사람들은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특히 병원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곳에선 더더욱 그렇다. 예쁨을 받기보다 오히려 더 혼나는 날들이 많았다.
간혹 선배들에게 질문하면, “그건 이제 네가 알아야 할 시기지 않아?” 라며 날카롭게 돌아오는 말에 입을 다물어야 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나는 그 친구의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실수를 반복하면 스스로도 속상하고, 자꾸 자존심이 상한다.
“나만 왜 이러지?” 싶은 순간들이 생기고, 그럴 때마다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더 익숙해진다.
나는 그럴 때 위로의 말을 따로 건네지 않았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그런 말도, “그 선생님은 원래 그래.” 같은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때로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음 업무를 설명했다.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생각했다. 물론 무심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버텨본 사람이었기에 그 방법이 최선일 수 있다고 믿었다.
오히려 내 동기들이 그리고 그 친구의 윗년차 선생님들이 더 다정한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함께 라운딩을 돌며 “괜찮아, 오늘은 좀 복잡했어.”라고 해준다거나, “나도 이거 자주 까먹는다?”며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주는 식으로.
나는 그 조용한 연대가 참 좋았다. 굳이 누군가 영웅처럼 챙기지 않아도, 말없이 곁에 있는 사람들 덕분에 사람은 조금씩 나아진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나아진다는 말은 어찌 보면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시간의 힘을 믿는 편이었다. 누군가가 매일 지켜보며 일일이 칭찬하지 않아도, 하루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은 분명 변해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흘렀고, 어느 날 문득 나는 그 친구가 달라졌다는 걸 알아챘다.
정확히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전날 했던 실수를 그날은 하지 않았고, 라운딩 순서를 스스로 정리해보겠다고 했고, 인계 전엔 체크리스트를 꼼꼼히 다시 들여다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됐다.
어떤 날은 다른 신규 간호사에게 “이건 이렇게 하면 좀 편해요”라며 가볍게 팁을 주는 모습도 보였다. 말투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태도는 여전히 서툴렀지만, 그 안에서 나는 성장의 신호를 보았다.
여전히 빠뜨리는 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봤을 때 중요한 건 변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그건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었고, 칭찬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하고 있었다. 그저 그냥 조용히 지켜봤다.
나는 프리셉터였지만, 매 순간에 개입하진 않았다. 프리셉터가 되기 전, 나 역시 그런 선배들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너무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순간엔 짧게 한 마디를 건네주던 사람들. 그런 존재가 얼마나 든든한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시기를 지나며 나는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억울하면 그 사람보다 더 많이 알면 돼요.”
그건 내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다. 혼나는 건 아무리 혼나도 익숙해지지 않고, 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견디다 보면 괜찮아진다’ 말하지만, 난 아니었다. 나는 그 상황을 뒤엎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에 차라리 내가 더 잘하면 되지라고 다짐했다. 그게 더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방식이었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말을 듣고 그 친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렇게 짧게 대답했지만, 나는 그 말 속에서 묘한 단단함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그게 맞는 걸까?’라는 물음이 먼저 나왔겠지만, 이제는 자기 속도로라도 버티고, 배우고, 바뀌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어쩌면 성장이라는 건 거창한 순간이 아니라, 그런 평범한 날들의 연속 속에서 생겨나는 건지도 모른다. 실수를 줄이려 애쓰는 자세, 말없이 책임지는 태도, 그리고 조용히 변해가는 모습들. 그런 모든 것들이 결국 하나의 사람을 만들어간다.
나는 실수보다 변화에 더 민감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혼날 때보다, 누군가 달라지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더 크게 반응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누군가 나를 기억할 때, 그런 선배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그 시기를 지나며 자주 생각했다.
사람은 눈에 띄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용히, 조금씩 변해간다. 나는 그 과정을 조급해하지 않고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리고 그 친구가 그런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했다. 지금은 결과보다, 그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