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
신규 간호사가 힘든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나도 그 시절이 있었고, 오래전이지만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매일 실수가 이어졌고, 아무리 잘해도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했다. "신규가 그렇지 뭐"라는 말이 위로가 되기보다는 자격 미달처럼 들릴 때도 있었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마치 내가 일을 일부러 하지 않은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나만 왜 이러지?’라는 생각에 빠지곤 했다.
그런 감정들, 나는 잘 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감정들이 내 안에서 아주 선명하게 살아있는 건 아니다. 내가 그 시절을 지나온 지도 오래고, 지금은 그 자리에 있지 않기에 내가 건네는 공감이 그 친구에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알지만, 말하지 않을 때”를 선택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은 신규 때도 이렇게 잘하셨어요?”
나는 순간 머뭇했다. 솔직히 잘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늘 혼나던 쪽에 가까웠다. 그리고 아마 본인의 신규 간호사 시절이 자랑스럽다고 회상하는 사람은 없을거다.
그래서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선생님보다 더 혼나면서 일했던 것 같아요. 그땐 그냥 싫어서도 뭐라고 했거든요. 근데 그땐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대부분은 정말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냥 다 모르겠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 억울하고 무기력해요.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조용히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되뇌었다.
"지금은 옆에 누군가 있으니까요. 억울함도 이렇게 풀어낼 수 있는 거죠."
나는 가능한 부드럽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늘 다정할 수는 없었다. 교육자라고 해서 무조건 따뜻한 말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냉정함도 필요했다.
실제로 나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별말 없이 넘어가지만. 나중엔 이거 하나로도 혼날 수 있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신규 간호사는 잠시 멈칫했다. 어쩌면 위협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내가 이 말을 건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지금의 이 시간은 보호받는 시기라는 걸, 그리고 이 시간 안에서 최대한 많이 익혀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한 번은 그 친구가 실수를 했다. 사실, 실수라기보다 중요한 약을 누락해서 투약 시간이 조금 밀린 정도였다. 환자는 큰 이상이 없었고, 보호자도 문제 삼지 않았다. 나는 그 상황을 정리하면서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그냥 다시 투약하고, 인계에서만 짧게 언급했다.
그날 저녁, 그 친구가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왜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저 아니면 누군가 한마디 했을거에요. 몰라서가 아니라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꼈을 뿐이구요.
그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그 침묵을 이해로 받아들였다.
매번 잘해줄 수는 없다. 그건 이상이 아니라 구조 때문이다. 누군가가 실수를 했을 때, 그걸 지적하는 것도 결국 역할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할 때가 있었다.
내가 없을 때, 다른 선생님들은 아마 말했을 것이다.
“이제 이 정도는 너가 알아야지.” “그런 건 체크리스트 보면서 해야지.”
그리고 그 말들이 내가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의 방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다르다. 나는 일부러 말하지 않은 거고, 그 말은 그 사람이 맡은 역할로서 했던 말이었다. 문책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직장의 질서를 위한 작동이라고 생각했다.
신규 간호사에게 실수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 실수에 대한 피드백은 늘 균등하지 않다. 누군가는 조용히 넘어가고, 누군가는 크게 지적받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주 내 선의가 오해받을 수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럴 때 나는 마음속으로 되뇐다.
“지금 이걸 넘긴 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네가 버틴 거야.”
칭찬은 선택이지만, 문책은 구조다. 도와주는 건 개인의 호의지만, 혼내는 건 직장의 기제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한 친절을 나의 업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친구가 점점 익숙해질수록, 나는 자주 거리를 두었다. 뭔가 알려줘야 할 것 같지만, 일부러 설명하지 않았다. 스스로 겪고 깨닫는 일이 더 오래 가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인계 도중, 체크리스트에 적지 않은 내용을 놓친 적도 있었다. 알려줄 수도 있었지만,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근무가 끝난 뒤 물어봤다.
“오늘 인계 때, 빠진 거 있었던 거 알아요?”
“네... 중간에 생각났어요.”
“왜 말 안 했어요?”
“제가 빠뜨렸다는 말이 싫을까 봐요.”
나는 잠시 웃었다. “그래도 말했으면 좋았을 거에요. 스스로 알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니까.”
그 말에 그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후부터는 자기가 놓친 것들을 스스로 꺼내는 일이 늘어났다. 변화는 누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움직일 때 온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지금에야 내가 옆에 있으니까,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상황을 정리해줄 사람이 있고, 어느 정도는 감싸줄 보호막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이 말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내가 없을 때는, 그 말들을 대신해주는 사람이 없을 거야.”
그건 위로도, 위협도 아닌 하나의 현실이었다.
프리셉터는 보호자도, 구원자도 아니다. 그저 짧은 시기를 함께 걷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걸 이해해주지 않기로 했다. 감정을 다 받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시기에 머물러준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친구는 이 말을 이해할지도 모른다. 내가 왜 일부러 말하지 않았고, 때로는 거리를 뒀는지를. 지금은 억울하고, 서운하고, 혼란스러웠던 그 날들이 훗날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만약 언젠가, 그 친구가 다른 신규 간호사 앞에 서게 된다면 이 말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내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근데 나중엔, 그게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