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자유일지도
신규 간호사 시절, 매일 병동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감각이 하나 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
내가 무슨 약을 준비하든, 수액 라인을 어떻게 연결하든, 옆에 있는 선배 간호사의 시선은 어김없이 내 손끝에 머물렀다. 보호하기 위한 시선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환자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시선을 매일, 하루 종일 모든 행동마다 느껴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보호와 감시는 때로는 너무도 가까운 거리에 있다.
어느 날, 신규 간호사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가끔은 제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처음엔 긴장해서, 나중엔 위축되서 매사에 조심스러워진다. 그런 조심성은 어느 순간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바뀌고, 실수할까 봐 더딘 동작은 더 실수를 유발한다.
그 친구는 매일 긴장한 얼굴로 근무했다. 말수도 줄었고, 항상 무언가를 확인하느라 바빴다. 선배들의 말 한 마디와 표정 하나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했다. 마치 병동 전체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듯이.
사실 그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신규 간호사는 병동의 모든 간호사가 한 번쯤은 지켜보는 대상이다. 업무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고,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율도 해야 하니까. 그래서 그 시선은 때때로 “보호”처럼 느껴지지만, 더 자주 “감시”처럼 다가온다.
나는 신규 간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많이 보이지만, 나중엔 아무도 안 봐.”
그 말에 그 친구는 놀란 듯 물었다.
“진짜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네가 어떤 간호사인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다들 알아야 하니까. 그래야 도와줄 수 있으니까. 근데 독립하면 그만큼 자유로워져. 그때는 너도 1명의 간호사로서 움직이는 거니까.”
사실 신규 간호사들은 독립하는 걸 무서워한다. 더 혼자 남겨질 것 같고, 그 어떤 실수도 혼자 책임을 져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절반만 맞는 말이다. 독립은 책임이 늘어나는 게 맞지만, 동시에 시선에서 벗어나는 전환점이다.
누군가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다고 느끼는 것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감각은 훨씬 더 건강하다. 오히려 독립 이후에야 진짜 자유도가 생긴다.
처음엔 그 자유가 당연히 익숙하지 않다. 어색하고,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해진다. 누군가 체크해주던 시기가 그리워지기도 하고, 실수를 방지해주던 선배가 옆에 없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곧 알게 된다. 감시 없는 현장은 오히려 자신을 더 성장시키는 무대가 된다는 것.
아무도 나를 보지 않으니까 내가 나를 보게 된다. 내 손으로 확인하고, 내가 순서를 정하고, 판단의 기준도 내가 세우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쌓여 스스로 움직이는 간호사로 만들어준다.
그 친구는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혼자 하는 게 조금 익숙해졌어요. 누가 봐주는 건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건 실무가 익숙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시선으로부터 자신이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졌다는 뜻이다.
나는 늘 모든 걸 말해주지는 않았다. 곁에 있어도, 일부러 확인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일도 많았다. 실수하더라도 직접 겪게 놔뒀다. 왜냐하면 그 순간은 보호보다 감시보다 스스로 하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선의 중심에서 벗어난다는 건 단지 편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자, 자기 자신에게 책임지는 단계로 나아간다는 신호다.
신규 간호사는 늘 보이는 사람이다. 단지, 언젠가 그 시선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때부터는 자신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그 시간이 익숙해지면 오히려 그제서야 진짜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 시기의 감시가 완전히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시기를 잘 지나가려면 시선 속에서 자기 속도를 잃지 않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그 끝엔 반드시 조금 더 단단해진 자신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너를 보고 있는 것 같지? 근데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안 볼 거야. 그때 네가 너를 어떻게 보는지가 제일 중요해.”
보호와 감시, 불안과 해방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 마음이 결국은 한 사람의 몫이 되어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