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지 않아도 미안한 사람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아무리 조용히 지내도 꼭 한 번쯤은 이런 일이 생긴다.
"왜 그렇게까지 참았어?" "아니, 그때 그냥 말을 하지 그랬어?"
그 말을 들을 때면, 속으로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왜 참았는지, 왜 말하지 않았는지는 말한 적도 없는데.
그리고 설명한다고 해도 이해하려고 했을까?
직장 내에선 묘하게 불공평한 순간들이 자주 온다.
예를 들면, 같은 실수를 해도 누군가는 조용히 넘어가고, 누군가는 바로 지적받는다. 정해진 규칙보다 더 중요한 건 ‘누가 했느냐’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점점 사람들은 말을 아낀다. 감정도, 생각도, 불편함도 별일 없이 넘어가는 걸 최고의 생존법처럼 익힌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말하지 않으면 없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회의 시간에는 침묵이 익숙한 사람이 되고, 문제가 생겼을 때는 왜 조용히 있었느냐는 책임이 따라온다.
그런데 말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또 없다. 괜히 얘기해서 분위기 이상해졌다는 시선을 감당해야 하고, 누군가의 불편함을 일으킨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 쪽을 택한다. 눈에 띄지 않게. 시키는 일은 하되, 더 나서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게.
어쩌면 이건 어떤 조직에서든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불만이 없는 게 아니라, 표출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걸 착각한다.
"그래도 ○○씨는 괜찮은 사람이지." 이런 말은 언뜻 들으면 칭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감정을 고려해 본 적이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말하는 사람이 되는 건 쉽지 않다. 아니, 단순히 말하는 걸 넘어서 말해도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남는 건 더 어렵다.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나중에 혼자 남겨지기도 하고, 좋은 뜻으로 건넨 말이 ‘예민하다’, ‘복잡하게 굴지 말라’는 반응으로 돌아오기도 하니까.
그러면 다시 생각한다.
내가 틀렸던 걸까? 아예 입을 다물고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매번 마음속에서는 크고 작은 고민들이 자란다. 눈앞의 불편함을 외면할지, 아니면 말을 꺼내고 감당할지. 대부분은 전자다. 누군가는 그걸 용기 없음이라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말은 쉽다. 하지만 말하는 삶은 쉽지 않다. 그리고 침묵은 편하지만, 항상 편안한 건 아니다.
뭐, 나도 물론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때가 있다. 근데 이상하게도, 입장을 바꿔서 내가 뭔가를 부탁할 땐 괜히 더 조심스러워진다.
그 사람 입장까지는 못 가보지 못하기에, 그리고 부탁하는 순간에도 그 간극이 느껴지니까. 그래서 오히려 더 어렵고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그렇다.
자기가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면 웬만한 일은 그냥 넘길 수 있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반대로 느껴지지 않으면,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상하고, 괜히 혼자 의미 부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게 쌓이면 결국, 원래는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결국, 사람들이 다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하고 싶어 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누가 위에 있고 누가 아래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 대화는 말이 아니라 힘이 돼버리는 것 같아 그게 좀 싫을 뿐이다.
직장 생활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내 생각엔, 직장은 오래 버티는 곳이 아니다. 그냥 다니는 곳일 뿐이다.
우리가 서로 잘 지내자고 말은 하지만, 현실에서는 내가 그냥 다니는 사이에 누군가는 버티고 있다. 처음에는 버티는 게 쉬워 보여도, 시간이 지나고 평생을 버틴다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두가 마음을 바꾸고 계몽되기를 바라긴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박탈감만 쌓이고, 마음 한편에는 허무함과 공허함만 남을 테니까.
모두가 조금씩 이해하고 배려할 때, 직장은 단순히 버티는 곳이 아니라 함께하는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