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나는 오늘도 부탁을 받았다.
“전화 주세요.”
교수님의 짧은 메시지가 뜨자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뭐 잘못된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순간 머릿속에 온갖 걱정이 스쳤다.
환자와 보호자가 힘들어하고 있으니 직접 가서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환자는 투석을 최대한 미루고 싶어 했다. 주치의도 그 의사를 존중했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이별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사람들의 감정은 복잡하고 깊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지도 모르는 그 무거운 감정을 포용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내 책임이었다.
내가 느끼는 무력감과 책임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환자와 보호자가 원하는 최선과 의료진이 제공할 수 있는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의료진이 차갑거나 무심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설명해야 한다.
병동으로 조심스레 내려가 환자분의 커튼을 살며시 열었다. 그 안에는 보호자와 환자분이 함께 있었다. 내일 퇴원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 솔직한 생각으로는 투석을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들의 의지가 강했기에 쉽게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사실, 이건 단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오히려 퇴원 전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들은 아직 이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듯했다.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쉽게 와닿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내 마음 한편을 무겁게 했다.
나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투석이라는 말만 들어도 누구나 거부감이 드는 건 당연해요. 만약 저라도 환자분 입장이었다면, 그런 말을 듣는 순간 절망감이 들 것 같아요.”
그 말을 꺼내면서 한참 생각했다.
환자분은 이미 고령이었고, 젊은 사람들과 똑같은 치료를 무리하게 진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함께 전했다. 보호자분 역시 그런 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직 부정의 단계를 겪고 있는 듯했다.
사람들은 가끔 그런 순간을 맞는다. 미래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는 있지만, 그 인식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거부하는 시기 말이다.
보호자분도 내가 말한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지만, 여전히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투석을 시작하면 어떻게 생활을 유지해야 할지 걱정이에요. “이렇게 고령인 환자가 투석을 버텨낼 수 있을지 정말 걱정됩니다.”
그 말속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그 누구보다 환자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사실 보호자분도 이미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겠죠.”
잠시 숨을 고르며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흘러도 보호자분 마음이 완전히 준비되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 말은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런 것 같다. 우리가 모두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완벽한 준비를 마친 채로 첫걸음을 내딛는 게 아니듯, 환자분들도 마음의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준비가 다 되었을 때 치료를 시작하면, 환자분 상태가 이미 많이 악화된 이후일 수도 있어요.”
잠시 말을 멈추고, 진심을 담아 이어갔다.
“환자분이 고령이고, 투석을 버텨낼 자신이 없으실 수도 있죠. 또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동안, 조금이나마 편안한 순간이 더 많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모든 치료가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럼에도 치료가 그 손해들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그 점에 대해 생각을 바꿔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예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이건 설득하려는 말이 아니라, 제 경험에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 상황에서 “투석하세요”라고 말하며 설득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설득할 수도 없다. 그건 단지 내가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하는 말일뿐이다. 또 나는 그런 말을 할 위치에 있지 않다.
결국 결정은 환자와 주치의의 몫이고, 나는 그저 중간 역할을 할 뿐이다. 보호자분들이 이야기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은 현실적으로 너무나도 어렵다.
환자는 치료에 반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약물 치료가 위험 요인을 더 높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다.
사실, 그런 상황에서 버틴다는 말은 주치의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지만, 의사는 신이 아니다. 하지 않겠다고 하면 달리 할 말이 없는 게 현실이다.
힘이 빠지는 건 환자나 의사나 매한가지다. 누구도 이 상황에서 쉽게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고, 그 무거운 감정과 책임을 모두 안고 갈 수밖에 없다.
그때 보호자분께서 조심스레 물으셨다.
“투석은 잘 버틸 수 있는 건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투석 자체가 버티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하는 것이다. 진짜 버티는 것은 투석 바늘이 들어갈 때 느껴지는 고통과 그 과정에서 오는 두려움을 견디는 것이다.
아마도 그 두려움은 실제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불안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투석은 버티는 게 아니라, 단지 하는 거예요. 원하지 않으면 안 해도 되는 거고요.”
그 말을 해도 결국 해야 한다고 결정하실 것 같았다. 하지만, 중요하게 생각한 건 결정을 인정하게 되는 그 과정 자체였다. 그 안에서 보호자분과 환자분이 스스로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나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보호자분께서도 아시겠지만, 제 생각에 지금 필요한 건 투석이라는 치료보다, 투석이라는 단어가 주는 짐을 조금 덜어내는 일이 더 맞는 것 같아요.”
그 말을 전하면서 나도 알았다. 지금 이 가족이 감당해야 할 건 수치나 예후가 아니라, 단어가 내포한 불안과 죄책감, 그리고 결정을 미뤄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죠.”
말을 마치며 나조차도, 그 문장이 진심이길 바랐다.